지난달 5일에 발간된 114쪽짜리 보고서의 제목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이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할 경우 증시·통화·재정 정책 방향을 분석했고 국내 수혜·피해 업종을 소개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사실상 미 대선 전에 나온 유일한 트럼프 관련 심층보고서라는 평가다.
힐러리 클린턴 시대의 개막을 의심하지 않을 때 나온 만큼 보고서 자체는 그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 이후 마치 이 보고서가 그의 당선을 예견한 보고서라고 소문이 났다. 하지만 가정법에 물음표까지 더해진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트럼프의 당선까지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최근 만난 변준호 유진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마치 우리가 당선을 예상하고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며 "혹시 발생할지 모를 변수를 대비해 스터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각 부문별로 연구를 진행했다"고 발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행보에 영향을 미친 건 지난 6월 발생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투표였다. 변 센터장은 "당시에도 브렉시트 투표가 부결될 것이라는 방향성이 있었지만 결국 가결됐다"며 "대형 이벤트에 대한 시장의 흐름을 함부로 예측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진증권 보고서 외에 그동안 국내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찾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나마 상반기에 일부 존재했지만 지난달 초 트럼프가 유부녀 유혹 경험을 자랑하는 11년 전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공개된 이후로는 더더욱 힐러리 편향적 분석이 넘쳐났다.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트럼프' 제목으로 검색되는 141개 보고서 가운데 단 19개만이 대선 이전에 나온 보고서다. 그것도 다수는 힐러리 후보의 정책과 비교하는 정도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에 쏟아지는 보고서를 보더라도 증시 방향성을 명확히 파악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견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한 증권전문가들은 대체로 당혹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수의 전문가들은 향후 투자 해법으로 '관망'을 제시한다. 이재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브렉시트 이후에는 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등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면서 국내 증시도 V자 회복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며 "L자 비슷
물론 지금이 주식을 살 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가치투자의 대가인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CIO)은 "심리적 패닉 상태에 따른 하락세가 분명 있지만 그래도 전략은 매수"라며 분할 매수로 대응할 것을 조언한다.
[채종원 증권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