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휴먼은 아무 실체도 없는 유령 회사가 얼마나 손쉽게 투자자들을 속여 거액을 갈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대기업 총수부터 외식업계 CEO, 가난한 자영업자들까지 사기 행각에 속아 넘어갔다. 이 같은 이면에는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가 숨어 있다.
2002년 화려하게 코스닥에 입성한 이 업체는 획기적으로 자동차 매연을 줄여줄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고 떠들었다. 아무런 매출이 없는 유령회사였지만 회계 숫자 조작만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2008~2010년 16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각종 세금계산서와 수출입면장 위조로 오히려 414억원의 순이익으로 공시했다. 일본에 가짜로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온갖 사기행각으로 2007년 한때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일일 거래량 100만주에 이르며 우량기업 지수인 '스타지수'에 편입되기도 했다. 2008년 이후 회사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지만 감시 의무가 있는 삼일회계법인은 회사 서류만 검토하고 2009·2010년 감사보고서에 '적정의견'을 냈다.
분식회계와 부실감사가 겹치며 포휴먼은 테마주로 둔갑해 수많은 투자자를 유혹했다. 현정은 현대 회장 등 재벌 총수에서부터 영세 자영업자까지 사기행각에 넘어갔다.
결국 2011년 한국 증시에서 퇴출됐고 투자자들은 막대한 투자금을 날렸다. 2013년 11월,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에선 법원이 "포휴먼 이 모 대표와 삼일회계법인이 384억원을 물어내라"고 결정했지만 이 중 244억원의 배상 책임이 있는 이 모 포휴먼 대표는 감옥으로 들어가면서 "물어줄 돈이 한 푼도 없다"며 배상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삼일은 140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우리도 포휴먼에 속았다"며 항소했고 다음달 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열린다.
2011년 포휴먼 상장폐지 후 5년간 계속된 소송전으로 피해 주주 중 상당수가 생계와 소송비용 부담으로 전열에서 이탈해 137명만 남았다. 이들은 삼일이 더 많은 배상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 주주 대표는 "'자신들도 속았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삼일이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음을 인정하는 부분"이라며 "이 대표의 배상책임 일부까지 포함해 전체 피해액의 50%(192억원)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 주주들은 삼일회계법인이 감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책임이 막중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포휴먼에 대한 '투자 적정' 감사보고서를 낸 삼일 소속 회계사는 제대로 된 실사도 하지 않고 보고서를 냈다.
피해 주주들은 삼일이 포휴먼의 일본 자회사 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실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피해 주주는 "담당 회계사가 일본 자회사 서류를 검토했다고는 하나 제대로 감사 의견을 내지 않은 반면 술 접대 등 각종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일 측은 "검찰과 금융감독원 조사를 통해 절차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기업의 악의적인 사기행각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양측이 배상 범위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3심 대법원으로까지 갈 수 있는 만큼 포휴먼 사태는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STX 대우조선해양 등 굵직한 기업들의 분식회계가 잇따라 터지며 회계법인의 책임론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안
증권계 관계자는 "포휴먼 2심 판결은 회계법인의 책임 범위를 결정할 최대 분수령"이라며 "감사보고서가 투자 결정에 중요한 잣대인 만큼 회계법인의 책임 범위를 늘려야 투자 심리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호 증권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