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씨가 공개한 청담동 고급빌라 내 수영장 모습/ 출처 : 이희진 인스타그램 |
꽤 오래 잊고 지냈던 부가티가 최근 SNS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부(富)의 상징으로, 부에 대한 환상의 정점으로 회자되는 모습이다. 8일 구속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30)로 인해서다.
30억짜리 부가티를 몰고, 청담동에 200평대 고급빌라를 소유한 이씨. 그는 투자자들에게 허위 주식정보를 퍼뜨리고 헐값으로 산 장외주식을 비싸게 팔아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이희진 피해자모임 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자 수만 3000명 정도에 피해 규모가 1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2의 조희팔’이라고까지 불리는 이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혹은 착각하고) 투자 결정을 한 것일까.
◇ 자수성가 성공 신화는 SNS를 타고…
그의 성공 신화는 SNS에서부터 시작됐다.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막노동을 전전하던 이른바 ‘흙수저’였다는 이씨는 블로그를 비롯한 SNS 상에서 장외 주식 투자로 수백억대 자산가가 됐다고 주장, 자신을 적극 알렸다.
특히 이씨는 SNS상에 “나는 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의 한 반지하방에서 태어났다”거나 “삼겹살집에서 불판 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애 처음 돈을 벌었다. 남은 삼겹살을 먹을 때 제일 행복했다”는 등의 글을 남겨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자임에도 자신이 가난했던 시절에 대해 감추지 않고 오히려 흙수저 출신임을 강조한 것이 투자자들의 감정이입을 더욱 이끌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능한 점 역시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는데 유리했다. '청담동 주식부자'로 이름을 알린 이씨는 아예 청담동 200평대 고급 빌라내부 모습과 실내 수영장 사진 등을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이 때 30억대의 외제차량 부가티 베이론은 국내 단 한 대 뿐으로 이를 소유한 이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부가티 차량이 부의 상징으로 회자되자 이씨는 부가티 베이론의 후속모델인 부가티 치론을 계약하러 일본에 간 과정을 SNS상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이씨의 ‘자랑질’에도 사람들의 거부감이 적었던 이유는 SNS 특성상 있어보이는 것도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되는 ‘있어빌리티(있다와 능력을 뜻하는 영어단어 Ability를 결합한 신조어)’가 통했기 때문이다. 장외주식 투자를 통해 번 돈까지 뒷받침되면서 투자자들의 믿음은 한층 더 공고해 질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이씨의 자랑질은 단순히 부와 인맥 등을 보여주기 위해서 뿐 아니라 투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한 미끼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10만명이 넘는 이씨의 SNS팔로어들은 결국 잠재적 투자자이자 잠재적 피해자였던 셈이다.
◇ 정보 부족한 장외주식시장…관리는 더욱 허술
이씨가 사기 행각을 벌인 주무대 ‘장외주식시장’의 특성 역시 많은 사람들의 투자를 부추긴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비상장 주식을 뜻하는 장외주식은 상장돼야만 생명을 부여받는 주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장 후 시세차익을 20~30배까지 올리기도 해 ‘대박’ 투자처로 여겨진다.
장외주식 한 투자자는 “장외주식을 거래하는 이유는 상장하면 흔히 말해 대박을 칠 수 있어서 아니겠냐”며 “요즘같은 초저금리 시대 눈이 번쩍 뜨이는 투자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고수익 창출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이씨가 적극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장외주식시장에서 기업 정보는 접근 자체가 매우 어렵다. 기업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회사에 대해 개미투자자들이 관련 정보를 얻어내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장외주식의 가격은 거래를 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가격을 설정하기 때문에 매도자가 매수자에게 얼마에 팔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다.
정보가 부족한 장외주식시장에서 이씨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또 한번 발휘됐다. 기업 정보에 목말라 있는 투자자들에게 최신 정보 기술과 해외선진투자기법을 내세워 그럴싸한 기업인 것처럼 곧잘 포장해서다.
사실상 상장이 불가능한 업체를 곧 상장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고 상장 후 주식가치가 폭등할 것이라고 꼬드겨 값어치 없는 주식을 팔아치우거나, 악재가 있는 장외 주식을 개미 투자자들에게 떠넘긴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본래부터 투자 가치가 없는 장외주식을 산 결과 당연히 투자자들은 투자하는 족족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씨가 몇 년간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이 씨가 만든 스토리텔링 함정에 투자자들이 쉽게 빠지고 그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할 관리망이 부재한 탓이 크다.
소영주 한국장외주식연구소소장은 “정보가 부족한 장외주식시장에서 자신이 투자한 기업에 대해 한번 맹신하기 시작한 투자자들은 쉽게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장외주식시장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규제는 따로 없다.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공식 거래소(KOTC)를 제외한 곳에서 이뤄지는 비상장주식 거래는 개인 간 1대1 사적 거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개인들 간의 거래에 금융감독당국이 관여하기도, 함부로
부가티 운전대를 잡았던 여인의 매력과 기자를 동일시 여겼던 생각은 다행이 혼자만의 착각으로 끝났다. 하지만 부가티 운전대를 똑같이 잡았던 청담동 주식부자에 대한 환상은 SNS파급력과 관리망의 허술로 언제든 또 재생산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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