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도 채권단의 조건부 자율협약 진입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하면서 해운업계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달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의 선박 이용료 협상이 좌초될 경우 두 국적 해운사는 연쇄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갈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진해운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18일 “현대상선뿐 아니라 한진해운도 용선료가 운임을 웃도는 상황”이라며 “3개월 이후 돌아오게 될 한진해운의 은행권 채권만기까지 한진해운과 선주간 용선료 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진해운 역시 조건부 자율협약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조건부 자율협약은 회사채 등 사채권자들의 만기연장과 선주들을 대상으로 한 용선료 인하 협상이 성공한다는 전제로 산업은행 등 은행 채권단의 채무만기를 연장하는 특수한 구조조정 형태다. 은행빚이 부채의 대부분인 STX조선해양 등 기존 부실기업들과 달리 두 해운사는 막대한 회사채 빚을 갖고 있어 은행 주도의 구조조정 수단인 자율협약과 워크아웃 모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달초 만기가 도래한 현대상선의 회사채는 이미 연체 상태다. 이런 와중에 현대상선은 이달 내 성사를 목표로 영국과 그리스 등지의 선주와 용선료 인하 협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채권단의 조건부 자율협약은 7월 안으로 회사채 만기 연장과 용선료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자동 파기된다.
이와 관련 해양수산부 고위 관계자는 “5월까지는 용선료 협상에 이어 산업은행 출자전환 등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며 생사의 마지노선이 더 빨라질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현재 연합체(얼라이언스) 재편을 위해 협상을 진행중인데 이 협상에 끼지 못하면 뒤늦게 기업을 살려놓아도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현대상선·용선주 간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한진해운의 같은 협상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또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자율협약 유지의 또다른 전제조건인 회사채 만기연장은 용선료 협상 성공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현대상선의 협상 무산이 한진해운의 협상 무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만기연장마저 불발되면 두 국적 해운사가 연거푸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염려했다.
반면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 만기연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정부와 채권단은 양대 해운사 통합 여부나 일부 해운사의 경영권 매각 등 산업 구조조정 단계에 착수할 예정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당장은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라며 “배를 굴리면 굴릴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벗어나면 근본적인 해운업 재편 방안 마련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해운사뿐 아니라 조선과 철강, 건설 등 다른 부실 업종 역시 현대상선·한진해운 같은 위험한 줄타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부실 기업들의 경우 글로벌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인 부실과 회사채 중심의 차입 구조라는 악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석우 기자 / 윤진호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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