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12월 11일(10:55)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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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기업과 기관들의 외화채권(한국물·Korean Paper)은 사상 최대 만기도래 물량(313억달러 규모)으로 발행량이 많았는데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렸다.
매번 '최저금리'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기록 경신 행진이 이어졌다. 글로벌본드의 경우 발행사별·만기별 최저금리 기록이 날마다 바뀌었고, 사무라이본드와 캥거루본드, 파운드화 채권 등 통화별 최저금리 기록도 거듭 경신됐다.
가장 최근 기록을 세운 주인공은 한국동서발전이다. 사실상 올해 마지막 한국물인 동서발전의 글로벌본드는 지난달 25일 5.5년 만기 5억달러 규모로 미국 국채 금리에 1.10%포인트를 가산한 수준에 발행했다. 이는 5.5년물 기준으로 아시아 기업이 발행한 달러화 공모채 가운데 가장 낮은 가산금리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중국 인민은행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 및 유럽중앙은행의 추가적인 양적완화 신호가 나온 상태에서 전략적인 발행시점을 포착해 투자자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
KDB산업은행은 지난 9월 5.5년 만기 7억5000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를 미국 국채금리에 0.825%포인트를 가산한 금리에 발행했다. 이는 5.5년물 기준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관이 발행한 달러화 공모채권 중 가장 낮다.
한국수출입은행도 지난 9월 5년 만기 5억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를 미국 국채금리에 0.725%포인트 가산한 수준에서 발행했다. 이 역시 5년물 기준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관이 발행한 달러화 공모채권 중 최저 가산금리다. 수출입은행은 신용등급이 같은 중국수출입은행이 발행한 달러화 채권보다도 0.175~0.45%포인트나 낮게 자금을 조달했다.
한편 수출입은행은 글로벌본드 외에도 올해 사무라이본드와 캥거루본드를 발행해 최저 금리 기록을 세웠다. 지난 3월 발행된 760억엔(약 7850억원) 규모의 사무라이 본드는, 2년물이 엔스왑 금리에 0.15%포인트를 가산한 연 0.4%, 3년물은 엔스왑 금리에 0.18%포인트, 5년물은 0.27%포인트를 가산한 금리로 발행됐다. 이는 역대 한국 기관이 발행한 사무라이본드 가운데 가장 낮은 금리다.
캥거루본드는 '최초·최대·최저' 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얻었다. 지난 4월 수출입은행이 발행한 5년 만기 5억 호주달러 규모 캥거루본드는 호주달러 스왑금리(BBSW)에 108bp를 가산한 수준으로 결정됐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한국 발행사 중에서는 최초로 5년 만기로 캥거루본드를 발행했고 발행 규모 역시 한국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계 최저 가산금리로 발행됐다는 점도 강조할 점"이라고 밝혔다.
◆'상대적 안정성 부각'…치솟은 한국물 몸값
-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글로벌 채권 투자자들의 채권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국 기관들이 발행하는 해외채권(한국물)만은 예외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상승 이후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매우 견고해졌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물은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포트폴리오상 신흥국 채권으로 분류되지만 신흥국 채권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채권으로 인정받고 있어 인기가 높다는 얘기다.
특히 일본에 비해서는 비교적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중국에 비해서는 보다 안정적이며 투자자 관리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물은 다른 아시아 국가 채권보다 리스크가 적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물의 인기는 곧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발행 때마다 '최저금리' 기록 행진이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자 모집을 시작하기만 하면 주문량은 최소 3~4배씩 몰렸고, 그만큼 금리는 내려갔다.
올해 상반기 발행된 정부의 20억달러 규모 외국환평형기금채권도 한국물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으로 30년물 발행에 성공한데다, 유로화 10년물은 역대 최저금리인 2%대를 기록하면서 우리나라의 높은 대외신인도를 확인했다는 평가다. 특히 30년 만기 달러화채권 금리는 4.143%로 아시아 최우량 채권(AAA등급)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보다도 낮은 가산금리로 발행됐다.
국제금융센터는 "금년도 한국물 발행은 사상 최대 만기도래 물량에도 불구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 시각 증가 등으로 유사 신용등급 채권과도 뚜렷한 차별화를 나타내며 호조를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발행사들의 노력과 노련함도 한국물의 몸값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한국물 발행사들은 다년간의 발행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 및 수요 예측을 통한 최초 제시 금리(Initial guidance) 설정으로 한국물의 가산금리(Spread)를 보다 더욱 바짝 축소시켰다. 또한 적극적인 로드쇼를 통해 해외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늘리고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글로벌본드를 발행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조석 사장이 직접 로드쇼에 참석해 투자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한국물 발행사들의 외자조달 담당자들은 수년간 해당 업무에 전념해온 전문가들인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시장 분석 능력이 매우 탁월한데다 투자자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이 같은 점이 한국물의 가격을 높이는데 일조했다"고 전했다.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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