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안준철 기자] “속이 썩어 문드러지겠죠.”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녀 단체 토너먼트가 열린 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양궁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성훈 대표팀 감독은 리커브 개인전과 혼성전 8강에서 잇따라 탈락한 여자 양궁 간판 장혜진(31·LH)에 관련한 질문에 “양궁은 아침밥 먹고 잘 쏘다가, 점심밥 먹고 못 쏠 수 있는 종목”이라며 “회복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선수라면 경기는 끝까지 잘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연이틀 동안 한국 양궁은 죄인이 됐다. 23일 리커브 개인전에서 남자부는 김우진(26·청주시청)과 이우석(21·상무)이 모두 결승전에 진출해 28일 집안싸움을 벌이게 됐지만, 여자부에 나선 장혜진과 강채영(22·경희대)은 각각 8강과 4강에서 탈락해 충격을 안겼다. 1978년 방콕 대회에서 양궁이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 채택된 이후, 여자 개인전에서 한국 선수가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최초 사례가 됐다. 여기에 24일 장혜진이 이우석과 짝을 이뤄 나선 혼성전에서까지 8강에서 탈락하면서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가 급속도로 퍼졌다.
↑ 한국 여자 양궁 리커브팀이 아시안게임 결승에 진출했다. 사진(인도네시아 자카르타)=ⓒAFPBBNews = News1 |
일본과의 준결승을 마친 여자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했다. 특히 장혜진이 홀가분함과 함께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해 보였다. 장혜진은 “연이틀 동안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아서 많이 걱정도 했는데 동생들이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 결승에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무겁게 말했다.
개인전 준결승에서 중국 선수에게 패한 강채영은 “단체전 하기 전까지 성적이 좋지 않아서 죄책감과 부담감을 느꼈다”고 까지 말했다. 막내 이은경까지 이들은 “결승에서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결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단체전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죄인을 자처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죄를 씻기 위해서 금메달을 약속했다. 세계최강의 지위를 놓지 않았던 여자 양궁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어 열린 남자 단체전 8강과 준결승에서 모두 승리한 남자팀 분위기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김우진, 이우석과 함께 나선 맏형 오진혁(37·현대제철)은 “많은 분들이 질타 해주셔서, 정신이 확 들었다. 감사하다”는 다소 뼈 있는 멘트로 시작했다. 1등을 하지 못하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당연히 1등을 해야만 하는 한국 양궁 선수들의 부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 양궁, 특히 여자 양궁은 세계 최강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1등을 못한다고 해서 죄인이 되는 건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더구나 한국 양궁은 1등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올림픽 여자 개인전 연속 금메달 행진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중단된 뒤, 한국 양궁은 소음 훈련을 따로 하는 등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점이 대표 사례다.
여자 개인전과 혼성전 결승 진출 실패도 한국 양궁이 자만하고, 방심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국 양궁 대표팀은 자신들도 모르게 1등을 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물론 1등을 하지 못하면 ‘당연한 것을 못한다’는 손가락질이 만든 강박일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듯, 못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들은 다시 1등을 약속했다. 1등만이 자신의 죄를 씻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이 1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