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이상철 기자] 12-15 패. 박상영(울산광역시청)이 부상 투혼을 발휘했지만 맨 마지막에 두 팔을 번쩍 든 선수는 드미트리 알렉사닌(카자흐스탄)이었다. 카자흐스탄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경기를 마친 뒤 박상영은 그대로 쓰러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는 한 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응급치료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됐다. 그의 옆에는 시상식 준비로 관계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박상영이 다시 일어났을 때도 표정은 밝지 않았다. 통증 때문일까, 아니면 죄송함 혹은 아쉬움 때문일까. 그는 메달리스트였지만 결과적으로 패자(敗者)이기도 했다.
↑ 박상영(왼쪽)이 19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시상식에서 드미트리 알렉사닌(오른쪽)의 금메달을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인도네시아 자카르타)=천정환 기자 |
펜싱은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아시안게임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다. 지난 두 대회에서 24개의 금메달 중 15개를 쓸어 담았다. 이번 대회 첫 날에는 금메달 2개를 놓쳤다. 4명의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진출한 선수는 박상영이었다. 하지만 첫 아시안게임 개인전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박상영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시상대에 섰을 때였다. 그는 메달의 색깔에 구분 없이 경쟁자를 축하해줬다. 자신도 은메달을 목에 걸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밝혔듯,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이외 이렇다 할 이력을 쌓지 못했다.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의미 있는 메달이었다.
특히, 박상영은 알렉사닌의 금메달 시상 때 누구보다 힘차게 박수를 쳤다. 승자를 축하해주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아 메달을 거부하거나 인사를 나누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박상영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카자흐스탄의 국기 게양 및 국가 연주가 끝난 뒤 시상대 맨 위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선수들이 알렉사닌 옆에 자리했다. 자연스레 스킨십도 이어졌다. 박상영은 알렉사닌의 허리를 툭툭 친 후 감싸 안았고, 알렉사닌은 박상영의 어깨에 손을 댔다.
그리고 시상대에 내려가던 박상영이 알렉사닌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장난스럽게 만져줬다. 알렉사닌도 싫지 않아 했다. 친분과 존중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박상영은 시상대를 내려간 뒤에도 알렉사닌을 비롯해 함께 경쟁했던 아시아 선수들을 배려했다.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스스로 부상 투혼이라는 표현을 원치 않았다. 경기 전부터 통증을 느꼈고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아팠으나 “실력 대 실력으로 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상영은 아름다운 패자였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메달리스트였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도 펜싱은 한국의 메달밭이다. 첫 날부터 가장 많은 메달 3개를 땄다. 그 중 하나가 박상영의 목에 걸려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