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한국이 2018 러시아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임무를 완수했다. 결과는 그것으로 끝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 그러나 유쾌하지 않다. 타슈켄트에서 헹가래를 하는 대표팀을 보며 박수 치고 기뻐한 사람은 소수였다. 다수는 근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축구팬은 ‘본선 진출을 당했다’라는 표현을 썼다. 3경기 연속 이기지 못하고도 어부지리로 A조 2위 자리를 지켰다. ‘천운’이 따른 대표팀이었다.
1년간 점점 커져갔던 불안감이었다. 끝내 해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커졌다.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월드컵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2014 브라질월드컵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도 우려가 크다. 이대로 한국축구는 괜찮은 것일까. 지난 1년의 시간, 그리고 최종예선 10경기. 냉철하게 한국축구의 현주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천운을 받은 한국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통과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1994 미국월드컵 이후 가장 아슬아슬했던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었다. 그러나 도움을 세 차례나 연속으로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만큼 운이 따른 적이 없었다. 한국은 1번이 아닌 3번이나 졌다. 본선 진출 티켓도 2장이 아닌 4.5장이었다. A조에는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가 속하지도 않았다.
한국은 4승 3무 3패 11득점 10실점을 기록했다.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최종예선 성적 중 가장 낮은 승률이다. 원정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프랑스월드컵부터 최종예선을 조별리그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기 시작한 뒤 처음이다.
한국은 반환점을 돌 때만 해도 3승 1무 1패를 거뒀다. 하지만 올해 가진 5경기에서 단 1승에 그쳤다. 이마저도 경기 종료 직전 시리아의 슈팅이 골대를 강타하는 행운이 따랐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완승을 거둔 적이 없다. 2골차 이상 승리도 없었다. 더 이상 한국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밀집 수비로 한국의 공격을 막는 데만 급급했던 과거와 달랐다.
한국은 내용에서 밀렸다. 첫 경기부터 위험천만했다. 중국을 홈으로 불러들여 3-0으로 리드했으나 후반 중반 이후 일방적으로 밀렸다. 2골을 내줬다. 자칫 망실을 당할 뻔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신승은 암시였다. 지금 같은 경기력이라면, 더 험난한 고비가 수없이 놓여있다고. 선수들이 개개인으로 느낀 경각심과는 다르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한 번 꼬인 실타래는 좀처럼 풀기 어려웠다.
↑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은 전임감독제 도입 이래 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경질된 첫 감독이 됐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상대가 더 잘 했다. 그리고 한국은 더 못 했다. 이유 없는 부진은 없다. ‘탓’은 결국 책임이다. 태극호 ‘선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은 부진의 중심에 있다.
한국은 슈틸리케 전 감독 체제에서 최종예선 8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4승 1무 3패였다. 홈 4경기를 다 이겼으나 원정 4경기를 다 못 이겼다. 내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잘 된 부분이 거의 없었다. 공격은 매끄럽지 않았고 수비는 불안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보와 분석이 중요한 현대축구에서 슈틸리케 전 감독은 엉뚱하게 팀을 이끌었다. 상대 분석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점유율 축구를 펼치겠다”는 말만 내세운 슈틸리케 전 감독은 고집만 부렸다. 부분 전술도 없었다. 뻔히 다 보이는 수였다. 상대는 면밀하게 한국을 분석하고 대응했다. 그 같은 흐름이 반복됐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맞춤형 전술이 없었다.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지 못했다. 경기 흐름을 뒤바꾸는 전술적인 포인트가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장지현 SBS 해설위원도 “전술적인 색깔이 없었다. 점유율 축구도 위험지역에서 실수가 많은 데다 패스 미스가 잦았다. 공-수 간격이 벌어지면서 빌드업, 템포 등이 다 문제였다. 총체적인 난국이었다”라고 평했다.
감독의 역량이 떨어졌다. 슈틸리케 전 감독은 전략가가 아니었다. 준비된 ‘비기’는 없었다. 안 되는 축구만 되풀이했다. 자연스레 대표팀 내 입지가 좁아졌다. 선수단 장악 능력도 떨어졌다. 대표팀은 깨진 바가지 마냥 새기만 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재신임을 받은 뒤 치른 카타르전에서 그는 ‘외로운 존재’였다. 슈틸리케 전 감독과 작별은 더 빨라야 했다.
↑ 손흥민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10차전에서 부진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한국은 ‘종이호랑이’였다. 2차예선을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하며 의기양양했지만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자 힘을 전혀 쓰지 못했다. 한국이 아시아의 강호일까.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려워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일류가 아니었다. 감독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기 어렵다.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것은 11명의 선수였다. 그들을 지켜본 축구팬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월드컵 본선이 끝날 때마다 되풀이 됐던 총평은 ‘개인기 부족’이었다. 2014년 여름 브라질에서 눈물을 흘렸던 태극전사들은 개인 기량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고 힘주어 말했으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이제는 세계무대가 아닌 아시아무대에서도 통하지가 않는다.
현란한 드리블 돌파, 예리한 슈팅, 정교한 패스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약속된 세트피스 공격도 거의 없었다. 볼 터치조차 안 됐다. 잔디 탓을 해야 할까. 상대 선수는 ‘어렵다는 환경’에서도 잘 했다. ‘질’이 떨어졌다. 그렇게 한국축구의 민낯이 드러났다.
한국은 해외파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베스트11의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해외파는 이름값과 기대치에 걸맞지 않았다.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 등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으나 그들 역시 큰 차이가 있지 않았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조직적으로 잘 뭉쳐야 했으나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팀 내 위화감도 컸다. ‘내분’은 예전부터 야기됐으나 번번이 봉합되지 않았다. 더욱이 태극마크와 국가대표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다.
정신적으로 단합되지 못했다. 선수들은 부담에 짓눌려 너무 경직됐다. 시야가 좁았고 실책도 많았다. 대차게 이겨내지 못했다. 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한 한국은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했다. 부딪히며 고전하기 일쑤였다.
↑ 신태용 감독의 계약기간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다. 남은 9개월, 본격적인 색깔을 입혀야 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신태용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9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3개월 뒤에는 본선에서 상대할 3개국이 결정된다. 현재 대표팀은 약하다. 더욱 강해져야 한다. 이대로는 러시아에서도 실망스러울지 모른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신 감독도 하나씩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장지현 해설위원은 “최종예선은 악몽이었다. 그러나 최종예선 성적이 꼭 월드컵 본선 성적과 직결되지만은 않았다. 이제는 악몽을 잊고 다시 시작해 하나하나 만들어야 한다. 신 감독 부임 후 조직력, 정신력 등 좋아진 부분도 (슈틸리케 전 감독 재임 시절보다)분명 있었다. 월드컵 본선까지 개선될 가능성은 있다. 본격적으로 신 감독의 색깔을 입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초점을 맞췄던 신 감독도 서서히 ‘신태용 축구’를 준비한다. 이란전 및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경기력은 분명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새롭게 출발한 팀은 핸디캡을 갖고 있었다. 신 감독도 본선 진출 확정 후 화끈한 공격축구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술 완성도를 높이면서 색깔을 확실히 뿌리내려야 한다.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맡아 누구보다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김민재(전북 현대) 같은 신예 발굴은 매우 중요하다.
선수의 기본기가 단기적으로 향상될 수 없다. 조직적으로 잘 다듬어져야 한다. 이란전 및 우즈베키스탄전을 통해 드러났듯, 중요한 것은 현 시점의 최고 기량이다. 컨디션도 중요하다.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손흥민(토트넘)은 큰 힘을 보태지 못했다. 해외파가 절대적인 발탁 기준이 될 수 없다. 베테랑의 역할도 매우 컸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현대축구는 많이 뛰어야 한다.
단 1명만 예외가 될 수 있다. 기성용(스완지 시티)의 빈자리는 컸다. 기성용이 빠진 중원은 무게감이 떨어졌다. 빌드업은 더욱 엉망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기성용은 대체 불가였다. 최종예선 8경기를 뛰면서 ‘하드 캐리’를 했다. 대표팀 전력의 50%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기성용의 건강관리는 대표팀의
한준희 해설위원은 브라질월드컵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브라질월드컵 본선에서 준비부족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선수들도 국가대표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위엄을 갖춰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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