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강윤지 기자] 스포츠도 정보전이다. 특히 각종 수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야구에서는 전력분석의 힘이 더욱 커진다. 전력분석이 팀 승리에 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라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전력분석의 도움 없이 승리하는 건 이제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프리미어12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전력분석원으로 합류했던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지피지기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이라고 하지 않나. 상대와 자신에 대한 전력분석을 같이 했을 때 시너지효과가 커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KBO리그 10개 팀의 전력분석 담당들은 각각 저마다의 방법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 전력분석은 현 야구에서 흐름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영역이다. 사진=MK스포츠 DB |
팀마다 1주씩 앞서 경기를 미리 준비하는 원정 전력분석원들이 있다. 대개 2인 1조(팀에 따라 1~3명으로 구성)로 일주일 뒤에 만날 팀들의 경기 총 6연전을 본다. A팀의 다음 주 일정이 B,C 팀과의 맞대결일 경우 한 사람은 B팀의 6연전을 보고 다른 사람은 C팀의 6연전을 보는 식이다.
전력분석원은 경기 전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고 컨디션을 체크하고, 팀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훈련 분위기도 확인해둬야 한다. 이 외에도 엔트리 변동 등 상대팀에 일어난 변화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핀다.
경기 중에는 팀/공격/수비/주루/작전 등으로 영역을 나누고 그 안의 세부 항목을 종합적으로 확인한다. 타자들의 타격감, 투수들의 상태부터 보직 변경 등의 변동 상황을 짚어내는 건 물론이고 선수의 기존 강점과 최근의 변화 등도 꼭 체크해야 한다. 영상 녹화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업무다. 투수들의 투구폼, 수비 포메이션 등을 영상물로 남기는 과정이다.
↑ 경기 전부터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길게 늘어있는 데이터들. 사진=강윤지 기자 |
분석한 자료를 가공하는 과정에는 현장의 의견도 크게 반영된다. 타격, 투수, 주루·작전코치 등 각 분야의 코치들이 원하는 데이터를 선별하는 것도 주요 임무다.
전달 방식도 중요하다. 자료는 방대한데 이를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전달할 때는 단순화하고 표준화하는 게 중요하다. 전력분석을 길게 해봐야 선수들이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체화할 수는 없다. 과거 전력분석 미팅 시간은 수면제처럼 졸음을 불러오곤 했다. 가능한 한 압축해서 간단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조차 기술이다.
거의 모든 팀은 경기 시작 전 전력분석 미팅을 한다. 두산은 시리즈 첫 날 투수 미팅에서 상대 1~9번 타자에 작전을 수립한다. 타자 미팅은 좀 더 잦다. 첫 날 상대 선발, 중간, 마무리투수를 모두 분석하는데 선발투수는 매일 바뀌기 때문에 매 경기 전 새로이 미팅 시간을 갖는다. 시즌 초반에서 중·후반으로 갈수록 하루 미팅에 소요되는 시간은 짧아진다. 한 두 차례씩 상대를 하다 보면 선수들의 정보도 축적돼 있어 간소화할 수 있다.
↑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기 전 노림수를 수립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이 진행된다. 사진=MK스포츠 DB |
두산에서 전력분석을 총괄하고 있는 유필선 운영팀 차장은 이 분야에서 16년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초창기와 비교하면 현재 전력분석 체계는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간편하고 정확하다.
유필선 차장은 “초창기에는 투수가 만약 120구를 던졌다면 그 120개를 모두 그렸다. 코스별, 구종별로 다르게 색칠하고 타구 방향 같은 것까지 다 손수 했다. 경기 끝나고 작업을 시작하면 항상 새벽 3~4시까지 해야 했다. 선수가 영상을 요청해도 ‘하루만 기다려’라고 말한 뒤 비디오로 녹화한 것을 해당 선수 것만 다 일일이 편집해서 보여줬었다”고 설명했다.
이랬던 국내 전력분석은 김성근 감독이 SK를 맡으며 상대 약점을 집중 공략했던 시기(2007~2011)를 기점으로 크게 발전했다는 시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구단들은 일본 프로그램을 주로 썼는데 이제는 국내 프로그램도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일본 제품을 쓰는 구단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국내 업체와 손을 잡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국가대표팀서도 국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프로그램마다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고.
하루 5경기씩 전 경기가 중계된 이후로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다 볼 수 있기에 팬들이 가장 반가워했지만, 못지않게 영상 활용도를 높일 수 있어 전력분석에도 큰 도움이 됐다. ‘영상화’는 전력분석의 현재를 집약할 수 있는 말이다.
↑ 구단은 앱을 개발해 배포함으로써 선수들이 쉽게 자신, 상대의 영상을 접할 수 있게 한다. 사진=kt 위즈 제공 |
물론 중계방송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매 경기 중앙 테이블에서 촬영하는 영상 외에도 여러 각도의 영상을 얻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kt의 경우에는 올 시즌 전부터 액션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스프링캠프 때는 투수를 새로운 각도에서 찍기 위해 불펜포수를 비롯해 1군 포수진 이해창-장성우에게 액션캠을 착용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수집된 영상은 간단한 편집 단계를 거쳐 선수들이 손쉽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kt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을 선수 개인 스마트폰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앱을 배포해 활용도를 높였다. 캠프 동안 구단에서 촬영한 영상은 유튜브나 모바일 메신저 등의 경로로 배포됐다.
심광호 kt 전력분석파트 과장은 “영상을 많이 보는 게 선수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데이터 관련된 것들은 구단에서 선수를 구성할 때 더 많이 쓰인다. 선수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다. 상대 선수가 무엇을 던지고 어떤 것을 잘 치고 이런 것들은 영상을 통해 보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 맞춤형 전력분석을 위한 의미 있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kt 위즈 제공 |
10개 구단이 있지만 구단에서 특별한 가중치를 두고 있는 자료 정도를 제외하면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정확히는 그렇게 여겨진다. 정보전에서 다른 구단의 사정은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력분석팀은 참신함을 입히려 아이디어를 확장한다. kt는 올 시즌을 앞두고는 전력분석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을 보였다. ‘개인화’다. 기존 획일화된 단체 미팅을 폐지하고 개인의 성향에 맞는 전력분석으로 방향을 이동하고자 했다.
개인화 시도는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왔다. 선수들에게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는 단체미팅을 없애 개인 시간을 확보하도록 했다. 전력분석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선수들은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더 많은 조언이 필요했던 선수들은 따로 전력분석실을 찾아 1대1로 공부했다
안타깝게도 팀 성적이 저조한 탓에 현재는 올 스톱. 다른 구단들처럼 단체 미팅으로 다시 변화했다. 그래도 내부서는 이러한 시도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평가한다. 좀 더 획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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