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프로야구 SK와이번스 트레이 힐만(54) 감독이 한국에 온 지도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10월 SK 감독에 선임된 힐만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를 밟은 두 번째 외국인 사령탑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지난 201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SK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때는 2015년 정규시즌 5위로, 와일드카드결정전에 나간 게 전부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KBO리그에서 전무후무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을 세운 SK도 암흑기가 도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SK의 선택은 외국인 사령탑이었다. 힐만 감독은 SK감독 부임 전부터 국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003년부터 일본 프로야구 닛폰햄 파이터스를 맡아 2006~2007년 두 시즌 연속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6년에는 일본시리즈 우승도 일궈냈다. 이후 2008년 미국으로 되돌아가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을 맡았다. 다만 캔자스시티 사령탑 시절에는 팀이 최하위권에 머물러 2010년 도중 경질되고 말았다. 어쨌든 힐만 감독은 한미일 리그에서 모두 감독을 맡은 최초의 인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트레이 힐만 감독은 친근한 감독이다. 경기 전 배팅볼을 직접 던져주기도 하고, 선수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직접 나서기도 한다. 그가 중시하는 소통은 그런 행동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진=MK스포츠 DB |
물론 힐만 감독은 역대 다른 감독과 분명 다른 점도 많다. 취임하면서 강조했던 ‘소통’과 ‘팬서비스’에 관한 부분은 분명하게 실천하고 있다. 올 시즌 인천에서 SK가 승리할 경우, 힐만 감독은 즉석에서 만든 사인볼을 1루 관중석으로 던져주고 있다. 힐만 감독은 “미리 사인한 공을 던져주면 재미가 없다”며 미소를 짓는다.
◆ Mr. 힐만의 팬퍼스트, 화끈한 ‘서비스’를 아는 남자
힐만 감독의 화끈한 팬서비스는 지난 5월 화제를 모았다. 5월2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전 이후 힐만 감독은 배우 김보성씨를 연상케 하는 가죽바지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의리!”를 외쳤다. 이날 SK는 스포테인먼트 10주년 행사로 힐만 감독과 함께 최정이 아이언맨 의상을, 한동민이 ‘김무스’ 패러디 의상을, 김동엽이 캡틴 아메리카 의상을, 윤희상이 드라마 도깨비 패러디 의상을, 김주한이 온라인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파인애플 아저씨 피코타로’ 의상을 입고 힐만 감독과 함께 응원단상에 올랐다.
일본에서도 힐만 감독은 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에 적극적이었다. 2006년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 지은 후, 그리고 일본시리즈 우승 달성 당시 일본어로 “신지라레나~이(シンジラレナ〜イ)”라고 외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냈다”라는 뜻이다. 2004년 홈경기 최종전 이후에는 백덤블링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취미가 기타치면서 노래부르기라 자비로 크리스마스 특집 CD를 제작해 팬들에게 나눠 준적도 있다. 물론 힐만 감독은 “그런 행사들은 구단 마케팅부서에서 기획한 것이니 내가 그 공을 다 가져가는 것 옳지 않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즐거워진다”며 환하게 웃었다.
↑ 지난 5월 힐만 감독은 팬들 앞에서 제대로 망가졌다. 물론 팬들이 기뻐하면 그는 기꺼이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SK와이번스 제공 |
◆ “김치는 건강식품” 한국 생활에 푹 빠진 힐만 감독
힐만 감독에게 한국 생활에 대해 묻자, “굿(Good)!”이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어서 좋다는 의미였다. 특히 한국의 치안에 대해서는 엄지를 세웠다. 힐만 감독은 “해외 나오면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게 안전인데, 한국은 안전한 국가다”라며 “내가 살고 있는 송도도 마음에 든다. 야구장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면서 농담 섞인 말을 전했다. 그는 “물론 일본 도쿄도 운전이 어려웠다. 한국에서 운전이 험하긴 하지만, 대부분 생계를 위해 운전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도 많이 섭렵하고 있는 중이다. 힐만 감독이 꼽은 최고의 한국 음식은 불고기 등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코리안 바비큐다. 김치도 마다하지 않는다. 힐만 감독은 “김치는 몸에 좋지 않나. 조금씩 다 먹어보고 나한테 맞으면 계속 먹는다”고 밝혔다. 한국 생활은 부인 마리씨도 함께하고 있다. 그는 “부인도 한국 생활에 만족스러워한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고 덧붙였다.
◆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 담긴 확고한 철학
힐만 감독이 지향하는 야구는 ‘데이터’에 기반한다. 그동안 한국야구에서 보기 힘든 메이저리그식의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애용하는 것도 그렇고, 선수 기용의 폭도 넓은 편이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 감독실 벽에는 힐만 감독이 직접 쓴 자료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책상 위에도 경기 자료로 쌓여있다. SK는 개막 후 6연패에 빠지며 출발이 좋지 못했지만, 이후 반등을 시작했다.
데이터를 중시하는 것은 오랜 기간 마이너리그 감독과 육성조직에서 일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힐만 감독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숫자가 승리의 높은 가능성을 가져다준다. 숫자가 많은 표본을 가지고 있다면 더 그렇다”고 강조했다.
폭 넓은 선수기용 속에는 선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존재한다. 시즌초 우완 서진용(25)을 마무리로 낙점한 힐만 감독은 서진용이 부진해도 계속 마무리 상황에 기용했다. 또 부진했던 정의윤(31)이 홈런을 치고 난 뒤 힐만 감독의 가슴을 주먹을 친 것도 화제가 됐다. 힐만 감독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쳐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만 새로운 장면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힐만 감독은 그랬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힐만 감독의 철학이 명쾌하게 드러난다. 그는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하는 것이다. 감독은 잘하는 선수들을 기회를 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때로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힐만 감독은 3위로 마친 SK의 전반기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기쁘긴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분명 우리팀이 발전한 부분도 있지만, 더 발전할 수 있었음에도 못한 점도 있다”며 “남은 후반기에서도 전반기에서 했던 것처럼 모든 분야에서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트레이 힐만
1963년 1월4일생
178cm, 81kg
텍사스대학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리그팀 선수(1985년~1987년)
오네오타 양키스 등 마이너리그팀 감독(1990년~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 팜
닛폰햄 파이터스 감독(2003년~2007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2008년~2010년 5월)
LA다저스 벤치코치(2010년 10월~2013년)
뉴욕 양키스 어시스턴스 (2014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벤치코치(2015년~2016년)
SK와이번스 감독(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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