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준결승 일본전)
야구를 9회까지 하는 이유? 이 ‘한일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8회까지 1안타로 눌렸던 타선이 9회 마지막 이닝에서 5안타 4득점으로 뒤집었다. 끝날 때 까지 끝나지 않는 승부, 이래서 야구는 ‘기적’이고 '인생'이다.
한국이 19일 일본 도쿄돔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일본에 4-3으로 역전승했다. 국제대회의 상식과 관례를 벗어나는 이기적인 운영으로 눈총을 받던 주최국을 적진에서 응징한 대역전 드라마였다.
이종열-최원호 해설위원(SBS)과 함께 이 한일전을 돌아봤다.
↑ 한국이 19일 도쿄돔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9회 대역전승한 후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사진(일본 도쿄돔)=김영구 기자 |
최위원=사실 4회 3실점한 후 마음이 무거웠다. 상대 선발 오오타니의 구위와 불펜의 일본 투수들을 생각할 때 커보였던 간격이다. 그러나 아무리 갑갑해 보이는 열세에서도 최대한 버티면서 기다리면 찬스는 반드시 온다는 걸 다시 한 번 가르쳐준 경기다. 대타 오재원 손아섭이 거푸 안타를 때려내면서 믿기 힘든 기적이 시작됐다.
이위원=역시 야구는 선취점을 뽑고 난 후 추가점이 중요하다. 출발은 개막전과 비슷했다. 두 경기 모두 팽팽하던 초반, ‘불운’과 ‘실책’으로 우리가 선취점을 빼앗겼다. 달랐던 것은 개막전에선 일본에게 2회 선제 2점을 내준 이후 5회와 6회 추가점을 허용했지만, 준결승에선 4회 3실점 이후 8회까지 추가점을 주지 않은 것이다. 중반을 버텨준 불펜진들이 수훈이다. 기어이 우리에게 흐름이 왔다.
▲ 일본의 투수 교체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됐다.
최위원=85구를 던진 오오타니를 7이닝 만에 내린 뒤 8회에 노리모토를 올렸는데, 개인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기용법이다. 큰 경기에서 선발 투수들을 릴리프로 쓰는 벤치가 많지만, 선발이 4~6회에 일찍 강판됐을 때 ‘두 번째 선발’ 느낌으로 중반을 길게 버틸 때나 적절한 것 같다. 8회 이후에는 경기 후반의 분위기에 익숙한 전문 불펜 투수를 믿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일본 불펜에는 올시즌 30세이브 이상을 올린 마무리 투수만 4명이 있었다. 그런데 왜 2이닝만 버티면 되는 8회, 굳이 선발요원인 노리모토를 썼는지 의문이다. NPB 데뷔 후 3년 내내 선발로만 뛴 투수다. 오오타니로 8회까지 막고 9회 무주자 상황에서 마쓰이 유키를 올리거나, 8회와 9회를 각각 1이닝씩 ‘30세이브’ 투수들이 막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고쿠보 감독의 선택은 우리에게 이로웠다. 도미니카전에서 7회 선발 페레스를 내려줬던 테하다 감독만큼 고마웠다.
▲ 그래도 한국 타선의 9회 4득점은 기대를 뛰어넘는 집중력이었다.
이위원=정신력과 근성으로 무장한 한국 타자들이 9회 저마다 최선을 뿜어냈다. 이용규의 몸에 맞는 볼도 수훈이었다. 기술적으로 피하지 않고 맞아내기 쉽지 않은 공이었다.
오오타니의 160km 속구에 고통 받으면서도 적응해나가고 있던 한국 타자들이 노리모토의 150km 속구에는 자신감 있게 맞설 수 있었다. 역시 ‘키플레이어’로 봤던 이대호가 역전 결승타를 때려내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 선발 이대은은 여러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쏟아내는 역투를 했다. 사진(일본 도쿄돔)=김영구 기자 |
최위원=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죽을힘을 다해 던지겠다”고 했던 이대은이 약속을 지킨 경기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1구, 1구가 느껴졌다. 구위가 좋았고 잘 던졌다. 심판만 정상적이었어도 실점 자체를 안 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구심의 초반 볼 판정은 지켜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들쭉날쭉 한 것도 아니고, 거의 일관되게 오오타니 공보다 이대은 공을 박하게 잡았다. 구심이 괴롭힐 때 투수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데 이대은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위원=적시타를 맞아 1점을 준 상황은 어쩔 수 없고, 실책이 나온 장면은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수훈이 많았던 유격수 김재호인데다 결국 경기도 이겼으니 그저 격려하고 싶다.
▲ 결승전 상대는 멕시코-미국전의 승자가 된다.
최위원=미국이 올라올 것 같다. 멕시코보다 전력이 탄탄한 팀이기도 하지만, 황당한 오심으로 우리에게 예선 1승을 가져간 상대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는 굳이 삿포로돔에서 열렸던 개막전부터 엉망진창 스케줄의 대만 예선전까지 참기 힘든 졸속 운영이었다. 일본의 ‘내맘대로 일정’ 횡포에 일본인 선심 배치의 비상식까지 나온 준결승도 어이없었다. 대회 내내 우리 선수들은 상대적 불리함과 불편함에 괴로웠는데, 주최국의 이점을 남용하면서 ‘억지’를 쓰던 대만과 일본이 차례로 자신들의 안방에서 탈락해 솔직히 후련한 느낌이 있다. 야구는 무리한 ‘꼼수’로 이길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미국은 홈팀이 아니지만, 우리가 결승서 만나게 된다면 홈어드밴티지 수준의 판정 혜택을 누릴 수도 있는 나라다. 제발 그런 그림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한국이 ‘기적의 명승부’를 선물한 이 대회의 마지막 경기만큼은 ‘수준’ 높은 공정한 승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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