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이던 대기업 이사회에 최근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내년 8월부터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두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올해부터 여성 이사를 선임하려는 기업들이 급증한 것입니다.
오늘(28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자산 2조원 이상 147개(2019년 결산 기준) 기업의 등기임원(사내·사외이사) 가운데 여성 이사의 비중은 5.1%로 조사됐습니다.
전체 1천86명의 등기임원중 여성 이사가 55명에 그친 것입니다.
이들 기업중 여성 이사가 1명 이상인 기업은 46개로 전체의 31.3%였으며, 68.7%에 달하는 101개 기업은 여성 이사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가 국내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성 이사 비중도 전체 441명중 35명으로 7.9%에 그쳤고, 이들 기업중 여성 이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기업이 70%에 달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여성 이사가 1명도 없는 100여개 기업들이 올해 또는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여성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입니다.
실제 올해 주총을 앞두고 기업들에 여성 이사 선임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들이 처음으로 올해 주총에서 여성 이사 선임안을 결의할 예정입니다.
LG그룹도 지주사인 ㈜LG를 비롯해 LG전자, LG유플러스, LG하우시스 등 5개 상장 계열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합니다.
엊그제(26일)에는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 계열이 여성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한 주총 안건을 공개했습니다.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아무래도 현재 기업 사내이사를 여성이 맡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개정법 시행 전까지 상당수 기업이 사외이사를 통해 성비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5.1%인 여성 등기임원 비중이 올해까지 10% 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여성 이사 수요 증가로 여성 인재들이 말 그대로 '귀한 몸'이 되면서 기업들은 여성 교수·법조인·관료 등 인재풀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여성이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도 사외이사를 재선임(6년)까지만 가능하게 한 현행법 때문에 끊임없이 또 다른 새 인물을 찾아야 합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오르면서 여성 이사를 확대하려는 분위기로 인해 여성 인재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기업들이 보유한 인재풀이 적다보니 최근 여성 전문 인력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대학가에서는 최근 여성 사외이사 수요 증가에 대비해 여성 사외이사 전문가 과정도 신설하고 있습니다.
여성 인재풀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1명이 2개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중복해서 맡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간 남성 중심으로 이사회를 운영하던 기업들이 가뜩이나 적은 여성 인재풀 내에서 한꺼번에 사외이사를 영입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며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여성 인력 확보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