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우병우를 징역 2년 6월에 처한다"
22일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우병우 전 대통령 민정수석(51·구속)에게 1심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왕수석', '핵심실세'로 불렸던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기소)과 최순실씨(62)의 국정농단을 묵인했다고 법원이 첫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도 실형을 예상한 듯 주문을 읽는 순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정면만 계속 응시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우 전 수석에게 "(국정농단 사건 관련) 직무 방임 내지는 은폐·가담 행위로 국가적 혼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질타했다. 또 "일말의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고, 취지와 의미가 분명한 관련자의 진술마저 왜곡하는 등 전혀 반성의 모습이 없다"며 실형 선고의 불가피함을 밝혔다.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의 핵심 혐의인 최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 경제수석(59)의 국정농단 사태를 묵인한 혐의(직무유기)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미르·K재단 관련 의혹이 큰 이슈가 된 2016년 7월 이후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내용, 두 재단 임직원 후보자에 대한 민정수석실 세평 수집으로 재단 실체 관련 정보가 피고인에게 보고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또 "안 전 수석, 김성우 당시 홍보수석(58)과 함께 대책회의를 했고 다음날 박 전 대통령 면담에서 대통령의 언동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재단관련 비위행위를 충분히 인식하거나 의심할만한 명백한 정황을 확인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진상조사 등 조치가 없었고, 청와대 개입여부는 최씨 개인 문제로 치부하며 그마저도 확인된 것 없다는 '법적 검토' 문건을 작성해 대통령 입장 발표 등의 은폐활동을 뒷받침 했다"며 유죄 판단 근거를 설명했다. 국정농단 직무유기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는 순간 우 전 수석은 고개를 떨구었다.
2016년 7월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55·사법연수원 18기)이 자신을 감찰하려 하자 그의 직무수행을 방해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민정수석으로서의 지위 또는 위세를 이용해 특별감찰관실의 감찰을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민정수석실이 특감실을 감찰할 수 있다는 태도를 내비치고, 당시 민정비서관은 경찰청장을 통해 현장조사 나간 파견경찰관에 대해 감찰을 시키는 등 노골적으로 감찰을 방해한 사실이 증명된다"고 설명했다.
또 공정위원회 관계자들을 통해 CJ E&M과 이미경 부회장 고발 등을 요구한 사실 등을 근거로 직권남용죄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청와대의 CJ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알았다고 볼 증거는 부족하나 불이익을 주고 수사를 받게 하려는 부당 의도로 공정위의 독립성·공정성을 침해한 전례 없는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다만 2016년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61)에게 문체부 국·과장 7명에 대한 좌천성 인사를 지시한 혐의, 대한체육회와 전국 스포츠클럽 실태 점검 준비를 지시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또 다른 혐의로 지난 1월 추가 기소 된 상황이라 향후 형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는 국가정보원에 지시해 공직자와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1987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4학년 재학 중 만 20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른바 '소년급제'를 했다. 이후 대부분의 시간도 출세가도를 달렸던 그는 앞으로 상당 시간 영어(囹圄)의 몸으로 살게 됐다.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90년 첫 근무지로 서울지검으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2001년 12월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으로 활약했다.
2009년 대검 중수1과장 재직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아 직접 신문하며 주목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도 그는 검찰에 남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냈다. 하지만 2012년과 2013년 연거푸 검사장 승진에 실패한 뒤 검사
그러나 2014년 5월 대통령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됐고 2015년 2월 민정수석으로 승진한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실세로 부상한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 이후 그는 청와대를 나왔고 결국 불법사찰로 별건 구속된 뒤 유죄 판결을 받았다.
[채종원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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