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임직원 3명에 대해 조세 포탈과 횡령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이들은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때 드러나지 않았던 260개 차명계좌를 통해 자금을 관리하고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 회장과 임직원 A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조세 포탈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회장과 현재 그룹 내 사장대우 직급으로 알려진 임원 A씨는 그룹 임원 72명 명의로 된 260개 차명계좌를 개설해 자금을 관리했으며 이 과정에서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양도소득세·종합소득세 등 총 82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삼성 특검 당시 양도소득세(상장사 지분 3% 이상 보유한 대주주가 주식을 양도할 때 내는 세금)에 집중했다면 이번 경찰 수사는 종합소득세까지 확대해 해당기간 동안 매년(조세 포탈 5억원 이상) 특가법 위반이 모두 적용된다.
경찰이 발견한 260개 차명계좌들은 삼성특검 당시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규모는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자금 유입 시기가 대부분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로 추정돼 공소시효 문제로 2007년 이후 행위에만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의 전산자료가 폐기돼 추적이 어렵고 공소시효가 지나 자금 유입 경로와 목적을 알아내도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원은 이런 이유로 경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중 일부를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로 밝혀진 차명계좌에 대해 삼성 측은 "고(故)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을 상속받은 것으로, 특검 당시 차명계좌 자료를 분산 보관하다가 잊고 제출하지 못했고 국세청 신고도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이번 경찰 수사는 서울 한남동 삼성 일가 자택 공사비가 수상한 통로로 지급됐다는 첩보에서 시작됐다. 수사 결과 이 회장 자택 공사비로 지급된 수표는 삼성 전·현직 임원 8명 계좌에서 발행됐으며 이 계좌들은 260개 차명계좌 중 일부로 밝혀졌다. 발견된 8개 계좌는 모두 그룹 계열사인 삼성증권을 통해 개설됐다.
경찰은 또 삼성 총수 일가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를 삼성물산 법인자금으로 대납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로 이 회장과 삼성물산 임원 B씨, 현장소장 C씨를 입건했다. 이들은 2008∼2014년 삼성 일가 주택 수리비용 가운데 30억원을 삼성물산 자금에서 빼돌려 쓴 혐의를 받는다.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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