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가 현재 시행중인 교수 재계약임용 심사 규정은 객관성이 부족해 이를 근거로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재임용 절차상에 문제가 있어 소송을 제기한 교수가 승소한 사례는 많았지만 법원이 서울대 임용규정 자체가 자의적이라고 판단해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사건은 '서울대 교수 논문으로 봐줄만하다'는 추상적 기준이 논문 평가 근거로 사용돼 임용권자의 편견이 심사 결과에 반영될 여지가 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점도 주목된다.
서울대 측은 향후 교수 인사 규정을 전반적으로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논문수 채우기' 대신 논문 내용의 우수성 여부를 더 중요시하는 최근 학계 풍토를 반영하지 못한 판결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가 김정숙)는 김낙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가 서울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서울대가 재임용 거부 결정 당시 사립학교법 규정과 취지에 부합하는 연구실적물에 대한 객관적 심사기준이 존재했다고 볼 수 없어 이 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이어 "질적평가는 평가자의 주관과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많아 임용권자로서는 각 등급을 부여하는 구체적 평가항목이나 평가기준을 마련해 심사위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연구실적물에 '우'를 줄 수 있도록 안내한 '서울대 교수의 논문으로 봐줄만하다'라는 기준은 객관적 평가항목·기준으로 볼 수 없어 심사위원에 따라 그 결과가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3월 서울대에 임용된 김 교수는 지난해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서울대 교수 임용규정 및 시행세칙에 따르면 교수업적평가 70점 이상과 연구실적물에 대한 평균 '우' 이상을 받아야 재임용이 가능하다
연구실적물 평가는 학내·외 학자 5명이 심사논문 등에 대해 수·우·미·양·가로 각각 평가한 뒤 최고·최저점수를 제외한 3명의 평균점수를 내는 방식이다. 그는 두 차례 진행된 연구실적물 심사위원회에서 업적평가는 70점을 넘었지만 연구실적물 평가에서 평균 '우' 이상을 받지 못했다. 김 교수는 불복해 학내 교원소청심사위에 심사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이후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 쟁점은 심사위원들이 '우' 이상을 줄 수 있도록 한 '서울대 교수의 논문으로 봐줄만 하다'는 기준이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였다. 이 가이드라인을 각 심사위원에게 제시한 안모 서울대 공대 교무부학장도 법정에서 "'서울대 교수로서의 적합한 수준'에 대해 학내 교수들 간 동의·합의된 기준은 없고, 대학 내 논란도 있다"고 증언했다. 김 교수를 심사한 위원들도 수·우·미·양·가 평가 산출 공식이나 '서울대 교수로서의 적합한 수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별도로 제시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1·2차 심사위에서 공통 심사 대상이었던 4편의 논문은 1차에서는 평균 '우'이상을 받았지만 2차에서는 4명이 '미'를 준 사례도 있다.
하지만 서울대 내에서는 이번 판결이 교수들의 질적 평가를 강화하는 글로벌 주요 대학의 공통된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동안 서울대는 교수 승진과 재임용, 정년보장 심사시 연구 논문의 게재 편수에 중점을 두고 교수 업적을 평가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교수들이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하게 하는데다 심사 요건을 충족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철밥통' 교수를 양산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이미 세계 주요 대학들은 교수 업적을 평가할 때 해당 학문분야의 전문가들이 평가 대상자의 연구물을 심사하는 '동료평가'(peer review)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며 "정량적인 지표에서 벗어나 질적인 우수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판결이 나와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교수의 연구 성과를 정성적으로 평가할 때 관례적으로 '우' 이상을 부여해오던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탈피해 객관적으로 엄선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평가를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각계 채용 비리 등으로 채용 기준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학과장이 학과내 모임에서 김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겠다고 말했다는 증언 등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인 점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학과장의 부정적 편견과 태도가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논란이 일자 서울대는 1심 판결 내용을 검토한 뒤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교무처 관계자는 "(재임용 심사규정을 비롯한) 현행 교수 인사 규정 전반에 대해 문제가 있는 부분은 없는지 검토하고 필요하면 손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종원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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