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계좌를 보이스피싱 조직에 빌려주고 입금된 돈을 인출하려고 했더라도 사기범행을 알지 못했고 인출시도가 실패했다면 무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24일 부산지법 형사6단독 허선아 부장판사는 "A 씨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거나 이를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다"며 "A 씨의 돈 인출시도가 사기방조 행위로 볼 여지가 있으나 은행 측 지급 거절로 범행이 이뤄지지 못한 '실패한 방조행위', '방조 미수'에 해당해 사기방조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28)는 지난해 5월 26일 'XX 무역, 신차수출 구매대행'이라고 적힌 휴대전화 광고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차량 구매비용은 모두 업체가 부담할 테니 차량을 본인 이름으로 구매한 뒤 명의만 이전해주면 수고비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4000만원가량의 사채 독촉에 시달리던 A 씨는 8일 뒤인 6월 2일 전화 속 남성인 정 과장을 실제로 만나 차량구매대행 일을 하기로 하고 자신의 은행계좌번호를 알려줬다.
그사이 정 과장이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카드론 대출을 받은 후 바로 상환하면 25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주겠다"고 50대 여성 B 씨를 속여 A 씨 은행계좌로 카드론으로 빌린 1650만원을 입금하게 했다.
정 과장은 A 씨에게 B씨 명의로 1650만원이 본인 계좌로 들어올 것이라며 돈을 인출해 가져 오면 수고비를 주겠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이어 "혹시 은행 창구 직원이 송금자와의 관계를 물어보면 외숙모에게 전세자금을 빌리는 것"이라고 말하라고 덧붙였다.
A 씨는 혹시 보이스피싱 범행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시키는 대로 은행으로 가서 돈 인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많은 돈을 한꺼번에 인출하려는 A 씨를 수상히 여긴 은행 직원
검찰은 A 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은행계좌 번호를 제공해 전화금융사기 범행을 방조했다며 사기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A 씨 측은 신차 구매대행을 위해 은행계좌 정보를 줬을 뿐 범행을 도울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부산 = 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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