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사회타락적', 사제간 성행위 묘사로 외면당한 마광수…"화장한 여인의 얼굴엔 본능이"
지난 5일 오후 소설가 마광수씨가 자신의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베란다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이 됐고 집에는 유산과 시신처리를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A4 1장짜리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고인의 지인들은 소설 '즐거운 사라' 논란이후 겪었던 우울증이 죽음의 원인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이후 문학계는 고인을 사실상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마씨는 1977년 월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해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등 자유분방한 성담론을 내세우며 세간을 뒤흔들었습니다.
1991년 출간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이듬해 외설 시비를 낳으며 마씨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검찰에 구속된 마씨는 1992년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1995년 3심에서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그해 연세대에서도 해직됐습니다. 당시 '즐거운 사라'를 출판한 청하출판사 대표 장석주(62) 시인은 "이 사건이 마광수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면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으며 약을 복용할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말했습니다.
1992년 고인을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구속케 한 '즐거운 사라'는 여대생 '사라'가 성 경험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성 문제를 음지의 영역에서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위선적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게 마광수 전 교수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즐거운 사라'가 변태적 성행위와 스승·제자의 성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음란물'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 예술과 외설의 구분, 창작과 표현의 자유로 논쟁이 번졌다. 고인이 구속되자 문학계뿐 아니라 미술·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구명운동을 벌였습니다. 대다수 문화예술인은 마광수 전 교수의 구속수감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권력의 시대착오적 탄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3년간 재판 끝에 1995년 6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습니다. 당시 법원은 "정상적인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침해하고 타락시키는 정도의 음란물까지 허용될 수 없다. 이 소설은 그 한계를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며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판정했습니다.
필화 사건 이후에도 작품활동을 했지만 자기검열 탓에 과거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의 대표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그보다 10년 전 동명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것입니다.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한편, 마광수의 연세대 제자인 유성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외롭고 힘드셨던 일들 잊으시고 그곳에서 자유로운 예술을 하셨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족은 7일 오전 11시 30분 영결식을 치르고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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