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20대 여성 중 가슴 사이즈가 C컵 이상인 비율이 A컵인 비율을 넘어섰다는 기사가 나왔다. 20대 여성의 C컵 이상 비율은 34.14%(C컵 23.96%, D·E컵 10.18%)로, 각각 34%와 31.75%를 기록한 B컵과 A컵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본 누리꾼들은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포털 사이트에 해당 기사가 걸리자 약 8대 2의 비율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은 댓글을 남겼다.
대부분 '말도 안 된다' '믿을 수 없다' '통계가 잘못됐다' '가짜뉴스다' 등의 내용이었다. 남성들의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에 여성들은 남성의 키를 비롯해 여러 신체 사이즈를 언급하며 반박하기도 했다.
에디터 지인 중 20대인 친구 10여 명에게 가슴 사이즈를 물어봤다. 속옷 브랜드나 디자인에 따라 75B·80A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지인의 비율이 60% 정도로 가장 높았다. 75A를 주로 착용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머지 세명은 각각 75B, 75B 또는 70C, 70C를 입었다.
이쯤에서 여성의 속옷에 대해 모르는 남성 독자들이 있을 수 있으니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여성 속옷 중 앞에 숫자 부분은 가슴 둘레에 따른 사이즈다. 영어 알파벳 부분은 여성의 가슴을 감싸주는 컵에 대한 사이즈를 표기한 것이다.
또 C컵이라고 해서 다 같은 C컵이 아니다. 예를 들어 75C와 80C의 컵 사이즈는 꽤 큰 차이가 난다. 75C가 80C를 입으면 가슴과 컵 사이에 공간이 많이 남게 되고 80C가 75C를 입으면 컵이 너무 작아서 착용하지 못할 것이다.
브랜드마다 사이즈 기준은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디자인이나 기능적인 요소(컵이 가슴을 덮는 정도, 원단의 신축성, 브래지어 날개 굵기, 와이어·패드 유무 등)에 따라 컵 사이즈가 한단계씩은 차이날 수 있다. 따라서 에디터 지인들이 A나 B 또는 B나 C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선택한다는 것은 맞는 얘기다.
하지만 에디터의 지인만 놓고 우리나라 여성들의 평균 가슴 사이즈를 따지기엔 무리가 있다. 10명 모두 키는 158cm~165cm 사이, 몸무게는 45kg~55kg 정도로 날씬한 편이다. 10명 중에는 가슴을 수술한 친구도 없다. 표본이 다양하지 않고 표본의 크기도 너무 작다.
그래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내 주변인들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통계가 나왔을까?'하는 궁금증 말이다. 또 온라인상에서 남녀가 서로간에 제기하는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통계를 제대로 검증해보기로 했다.
관련 통계를 제공한 속옷업체 좋은사람들 측에 연락했다. 이곳은 보디가드, 예스, 제임스딘 등 6개의 속옷 브랜드를 운영하는 업체다. 표본은 어떻게 선정됐는지, 조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어떻게 결과를 도출해냈는지 등을 물었다. 아울러 속옷 매장에서 실제 판매되는 컵사이즈 추이를 통해 통계의 진위 여부를 따져봤다. 더 확실하게 조사하기 위해 명동에 나가 현장 조사도 해봤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풀어보겠다.
◆ 통계의 표본은 어떻게 선정됐나
'속옷전문기업 좋은사람들은 여성 고객 6500여 명을 대상으로 정확한 가슴 사이즈를 측정해주고 전문적인 속옷 시착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진행했던 연간 캠페인 2017 파인드 유어 핏(Find Your Fit)의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라는 기사 내용을 보고 표본이 잘못 선정됐다고 지적한 댓글을 봤다. 가슴 사이즈를 재는 캠페인이라면 가슴에 자신 있는 사람들 위주로 캠페인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업체 측에 이에 대해 물어보니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캠페인은 좋은사람들 산하 브랜드 매장에서 진행됐다.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에게 어떤 사이즈의 속옷이 본인에게 더 잘 맞는지 조언을 해주기 위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돈을 주고 속옷을 살 예정이라면 이왕이면 나에게 더 잘 맞는 속옷을 구매하길 원할 것이다.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자신의 몸매를 보정해주는 속옷을 사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가슴 사이즈는 A입니다!'라고 알려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업체 측은 "가슴이 큰 여성들 위주로 캠페인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며 "표본의 크기도 6500여 명에 달해 충분히 많은 인원의 데이터를 가지고 낸 통계다"라고 설명했다.
◆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자
↑ 속옷업체 좋은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캠페인을 통해 얻은 여성 가슴 사이즈 변화 추이 [자료 제공 = 좋은사람들] |
전연령대 여성 가슴 사이즈 중 C컵 이상은 2014년 16.78%, 2016년 25.86%, 올해 29.42%였다. 이중 20대 여성의 데이터만 따로 추려 다시 통계를 내봤다. C컵 이상의 비율은 2014년 20.60%, 2016년 28.61%, 2017년 34.14%였다. 해마다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A컵의 추이도 살펴보자. 전연령대 자료에서 A컵인 여성은 전체의 2014년 50.70%, 2016년 45.37%, 2017년 37.96%를 차지했다. 20대 여성 중에서는 A컵의 비율이 2014년 44.62%, 2016년 39.77%, 2017년 31.75%인 것으로 나타났다. 점차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4년·2016년 자료를 보면 20대 가슴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큰 편이긴 했지만 C컵 이상이 A컵을 앞지르진 못했다. 2014년 20대 A컵 비율은 44.62%였지만 C컵 이상은 20.60%에 불과했다. 2016년 20대 A컵 비율은 39.77%, C컵은 28.61%로 격차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A컵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20대 C컵 이상 비율은 34.14%로 A컵(31.75%)을 추월했다. 하지만 전연령대로 봤을 땐 여전히 A컵(37.96%)이 C컵 이상(29.42%)보다 많았다. '우리나라 20대 여성 중 가슴 사이즈가 C컵 이상인 비율이 A컵인 비율을 넘어섰다'는 기사 내용은 사실이었다.
◆ 실제로도 C컵 이상이 더 많이 판매될까
매장에서 실제 무슨 컵사이즈가 많이 판매되느냐 역시 이 같은 통계를 뒷받침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사람들이 운영하는 브랜드 중 20대를 타깃으로 하는 예스 전국 매장에서 2014년부터 올해까지 판매된 컵사이즈 비율을 알아봤다. 하지만 20대를 타깃으로 했다고 해도 꼭 20대만 이곳에서 속옷을 사라는 법은 없다. 전연령대가 이용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젊은층 비율이 높은 브랜드를 선택한 것이다.
20대가 주로 찾는 이 브랜드에서 컵사이즈별 판매율 추이를 살펴본 결과, 시간이 흐를 수록 C컵 이상의 판매율이 A컵 판매율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C컵 이상 판매율을 보면 20.3%, 23.7%, 25.4%, 29.3%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A컵 판매율은 50.4%, 49.4%, 44.3%, 41.4%로 줄어들었다.
컵사이즈별 판매 점유율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우리나라 여성들의 신체 사이즈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업체 측은 "C컵 이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공장에서 해당 컵사이즈에 대한 생산량도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 "B컵과 C컵이 주로 판매됩니다"
이래도 믿지 못하는, 아니 믿지 않으려는 일부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쐐기를 박을 만한 증언도 확보했다. 에디터는 직접 명동에 있는 속옷 매장 3곳을 방문했다. 젊은층이 많이 방문할 만한 매장 위주로 골라 들어갔다.
명동에는 중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는 점도 인지하고 '한국인 사이에서 주로 판매되는 속옷 사이즈는 무엇인가요?'라고 매장 직원들에게 질문했다. 3곳 직원 모두 "B컵 아니면 C컵이요"라고 대답했다.
컵사이즈별 판매 비율에 대해 다시 한 번 물어보니 "B컵과 C컵이 비슷한 비율로 70% 이상 판매되고 A컵과 D컵 이상이 나머지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 매장 직원은 "요즘엔 C컵은 말할 것도 없고 G컵을 찾는 고객도 꽤 많다"라고 덧붙였다.
어떤가. 이제 좀 의혹이 풀리는가. 우리나라 여성의 가슴 사이즈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에디터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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