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알고 싶은 것을 끝까지 추적해서 알려드린다."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이름과 유사한 홍보를 하는 한 사설 정보업체(흥신소) 홍보물이다.
매일경제 기자는 최근 해당 흥신소에 전화를 걸어 "○○○씨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을 알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업체는 연락처, 생년월일, 주소 등 기본정보를 알아내는 데에는 착수금 20만원, 후불금 20만원을 요구했다. 기자가 "어떻게 믿느냐"고 의심하자 업체 쪽은 대뜸 기자의 이름을 부르며 "○○씨 맞죠? 번호만 봐도 바로 조회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 "어떻게 알았느냐"는 물음에 업체는 태연한 말투로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로 구축된 데이터베이스(DB) 덕분"이라고 했다.
정부기관도 아니고 사정당국도 아닌 일개 흥신소가 어떻게 이 같은 DB를 갖출 수 있었을까. 한 흥신소 업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가게(흥신소)를 하려면 '족보'로 통하는 개인정보 DB부터 사야 한다"며 "(의뢰받은 대상 정보가) DB 안에 있으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DB를 사는 건 돈만 주면 어려운 일도 아니고 기본 DB는 돈을 크게 들일 필요도 없다"고 귀띔했다. 인터넷 곳곳에 개인정보가 담긴 방대한 DB가 거래된다는 얘기다.
지난달 26일 숙박시설 예약 애플리케이션(앱) 업체 '여기어때'에서 99만여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며 2차 피해 염려가 나오는 가운데, 이처럼 유출된 정보가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연락처를 포함하고 있어 흥신소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해킹하는 스미싱이나 불법 대출에 악용될 소지도 높다. 구매·상담기록, 숙박시설 예약기록을 비롯해 의료기록까지 포함돼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9일 기자가 인터넷 검색창에 'DB 구매'를 키워드로 검색하니 '교육DB·보험DB·쇼핑몰DB·금융DB·성인DB·병원DB 건당 00원' '대출DB 월 300'과 같은 문구를 내건 수백 개 광고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 같은 내용들은 교육·보험·쇼핑몰·성인사이트 등에 회원가입했던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말한다.
업체들은 대출상담을 신청한 사람들의 상담 기록은 물론 병원DB에 의료기록까지 포함돼 있다고 홍보했다. 손쉽게 찾은 메신저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내자 개인정보(DB) 판매자는 "홍보는 아직 문자가 최고"라며 "통신DB는 건당 60원"이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물론 판매자들도 불법인 걸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직접 연락처를 밝히지 않고 카카오톡, 스카이프 등 각종 메신저 아이디만 올려놓고 불법 영업 중이었다. 가격은 정보 종류에 따라 건당 10원부터 100원까지 다양했다. 많은 양을 한 번에 구입하거나 단골이 되면 할인도 가능하다고 했다. 고급 정보일수록 가격도 높았다. 대출 상담 내역 등은 건당 1000원이 넘어가는 고급 정보로 취급됐다. 'DB'를 구매해 영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한 자영업자는 "생각보다 쉽게 구매할 수 있고 돈 몇만 원만 입금하면 10~20분 만에 바로 정보를 넘겨준다"고 말했다.
판매자들은 단순 정보 판매에 그치지 않고 유출된 정보로 특정 사이트 아이디 등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특히 중국에서 네이버, 다음 등 국내 주요 포털의 아이디가 건당 1000~6000원에 불법으로 판매돼 다시 각종 국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에서 CJ그룹 멤버십 서비스 'CJ ONE' 아이디가 10만건 이상 불법 거래된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3500만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2100만건, 2015년에 300만건이 유출됐고, 작년 상반기에도 1100만건이 외부로 흘러나갔다. 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피해도 수년 새 눈에 띄게 늘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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