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2박 3일간 팔로알토, 쿠퍼티노, 마운틴뷰, 버클리 등을 돌아다니면서 21세기 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사회, 그리고 대학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방향을 찾았다.
이에앞서 성 총장은 지난달 22일부터 25일까지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맥도넬 인터네셔널 스칼러스 아카데미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그 이후 바로 실리콘밸리로 넘어와 2박 3일간 묵으며 실리콘밸리를 탐방했다. 세계적 고등교육 평가기관인 더 타임즈(THE Times)가 UC버클리대에서 개최한 ‘2016 세계 고등 교육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2박 3일간 성 총장의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인터뷰는 방문 일정 중간 중간에 느낀 생각을 그대로 담았다.
물론 성 총장의 실리콘밸리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4년전에 산타클라라대 로스쿨에서 한달간 생활하며 헌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서울대 총장 취임 전이었던 당시 구글, 페이스북도 방문해봤다고 했다. 하지만 4년만에 방문한 실리콘밸리는 또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단순히 서울대 미래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미래에 대해서다.
그래서인지 그의 화법은 솔직 담백했다.
“지금은 최고 인재들이 정치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과거엔 나라를 대표하는 인재들이 정치에 뛰어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만큼 정치의 영향력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신문 방송의 정치 사회면을 보면 난리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미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국 대선 두 후보가 사상 최악이라는 것 아닙니까. 반면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큰 변화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세계를 향해서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 총장과 동행 취재 중 가장 열띤 토론이 이뤄진 곳은 스탠퍼드대였다.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벤처캐피털(VC)가 모여 있는 샌드힐로드(Sandhill Road). 샌드힐로드 왼쪽엔 코슬라벤처스, 세콰이어 캐피털, 글레이락 파트너스, 앤더슨 호로위치 등 유명 VC 회사가 포진해 있고 오른쪽엔 21세기 최고 대학으로 성장 중인 스탠퍼드대가 있다. 이곳에서 성 총장은 스탠퍼드 아태연구소 신기욱 교수, 스탠퍼드 경영대 황승진 교수, 스톰벤처스 남태희 대표와 실리콘밸리 혁신 문화에 대해 토론했다. 성 총장은 토론 직후 ‘자유와 창의가 이끄는 대한민국’, ‘시장을 더욱 중시하는 경체제제’에 대한 화두를 떠올렸다.
성 총장은 토론 직후 “산업 부분에 시장을 중시하라.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어려운 얘기다.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를 얘기하는데 시장경제가 어간이다. 사회적이란 말은 수식어다. 헌법상 경제질서 키워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 자유와 창의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와 관련해 “우리가 어느정도 우리 사회에 맞게 작동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영원한 미지수”라며 “한국은 사회적 컨센서스 형성이 안돼 있다. 제 4차산업 디지털 혁명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이 시대 화두는 무엇인가 새 선순환 기저를 만들어야 한다. 선순환 기저는 개인과 기업의 자율과 창의에 의탁하는 것이 유일한 것이다. 이것을 역동적으로 어떻게 묶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한류 열풍도 정부가 열심히 하는 면도 있지만 CJ 등 민간 기업이 이끌고 있는 것 아닌가. 과거 김우중 회장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며 돌아다녔을때 수십개 국가에 대사관을 만들기 전에 무역 교류를 텄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서울대 동문들과 대화에서는 “탈경계형 산학협력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현장에서 있으니 피부로 느끼는 것 말해달라. 실리콘밸리엔 공장도 없으면서 세계 1위 만드는 것이 여전히 놀랍다”고 말했다.
◆서울대 in 실리콘밸리, 자신감도 얻어
서울대 개교 70주년을 맞아 새 시대를 준비하는 성 총장은 앞으로 ‘서울대 in 실리콘밸리’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번 투어에서 협력을 위한 어느정도 결실을 맺고 왔다. 서울대 인재를 대거 실리콘밸리로 보내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서울대 동문도 적극 활용,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성 총장은 “SNU아웃바운드 프로그램을 4개에서 10개로 늘렸다. 나라별로도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실리콘밸리 아웃바운드도 구상 중이다.세계에서 나가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프론티어 정신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빅데이터 연구 전문 대학원인 ‘데이터 사이언스 혁신 대학원(가칭)’ 도 야심찬 계획이다. 내년 개원을 목표로 차상균 빅데이터 연구원장이 이끌고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다양한 학부 전공을 가진 인력을 선발, 초학제적 인재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박사학위나 논문 수보다는 산업체 현장에서 일하는 인재를 교수로 초빙할 예정이다.
서울대의 전통적인 학제를 벗어나서 새로운 혁신 모델을 만드는 전문 대학원을 만들겠다는 파격적 시도다. 초빙해야할 전세계 인재 리스트를 가지고 성 총장과 차상균 원장이 직접 찾아나설 예정이다. 성 총장은 “미국 대학이 이래도 되느냐고 늘 생각했었다. 1인당 학생이 등록금 생활비가 5000만원~1억씩 써야 한다. 디지털 사회에서 더 격차 심해지고 있다. 그런 돈 내면서 대학 다닐 학생 많이 있겠는가. 앞으로 대학이 상당히 바뀔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떨어지는 대학도 속속 나온다. 대학도 전반적 개편이 불가피하다. 서울대도 데이터 사이언스 혁신 대학원과 함께 무료 온라인 강좌(무크, MOOC)도 대대적으로 하면서 크게 바꾸려 한다. 혁신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위기감’만 느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수확이다.
성 총장은 “구글 페북 다녀보면서 문화가 다른 것 아닌가 한국적 기업문화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국적이나 어디서 일하는가 상관없이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낳은 인재들이다. 이런 분들과 대화 나누면서 대한민국 희망 같은 인재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에 같이 할 인재들이다. 미국에 있건 한국에 있건. 이분들 함께 하는 중심 축도 형성해야겠다. 중심축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업, 대학, 정부에서 할 수 있겠지만. 투명하게 선도해 나가는게 대학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한발 늦었다는 기분도 들지만 이번에 실리콘밸리에 와서 미국에서 미쳐 하지 못했던 것까지 우리 대학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 권력 분점형 개헌 필요 ... 헌법에 민족적 민주주의 보다 세계 시민으로서 한국 반영해야
성 총장 임기도 절반이 넘었다. 서울대 총장은 한국의 대표 오피니언 리더이기도 하다. 그가 혁신의 본고장 실리콘밸리에서 본 한국 사회는 어떨까. 또 어떻게 혁신해야 할까. 성 총장에게 ‘한국의 리더십’에 대해 물었다. 한국도 이제 차기 대통령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성 총장은 한국에 이제 ‘권력 분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엔 공유경제의 대표주자 우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 영역도 이제는 일정하게 권력을 나눠가져야 한다. 모아니면도(All or nothing)식의 시대는 아니다. 52% 득표한 당선자와 48% 득표해 낙선한 세력 사이에 일정 나눠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 총장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은 헌법학자로서의 소신이다. 대통령은 외치(外治)를 담당하고 국무총리는 내치(內治)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총장은 “아이젠 하워, 드골 등이 활약하던 영웅의 시대가 있었다. 권력의 인격화 시기다. 21세기 들어선 리더십도 분화되고 파편화 된다. 미국을 포함, 전세계 어디건 영웅적 지도자는 없다. 한 사람의 리더십에 지나치게 의존팔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협치하고 권력의 분점을 통해 보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의원개각제는 정치인들 놀이터가 될 것 같아서 안되겠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 지위에서 통일 문제를 다루고 국가 안보도 시비의 대상이 되서는 안된다. 통일 국가와 안보는 대통령이 숙고하고 한진 해운 사태 등 일상적인 내치는 총리 중심으로 여야 두루 만나서 난상 토론하고 이런 것이 좋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이상적으로 얘기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이제 한국의 지도자들도 민주화 과정에서 쌓아온 욕심들을 버릴 때가 됐다. 민주화를 이끈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 못지 않게 권위적이었다. 이제 이런 시대는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형 헌법 개정’의 방향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민족적 민주주의’ 색채가 강한 대한민국 헌법을 바꿔 ‘세계 시민으로서의 한국’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낙인 총장은 “우리 헌법엔 민족문화 창달과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 헌법을 개정하면 민족적 민주주의 측면 보다는 세계 시민 측면에서 들어야 봐야 한다. 이제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체류 중인 사람도 100만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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