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금융당국이 제시한 한진해운 구조조정 계획은 대주주 사재 출연, 자산 매각, 경영권 포기 등 현대상선이 그간 밟아왔던 자율협약 추전 과정을 일종의 ‘교과서’로 삼아 한진해운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동시에 현재 시점에서 볼때 한진해운 정상화 과정이 현대상선보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진그룹측의 준비와 의지 또한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해석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날 “한진해운측의 자구노력에 대해 용선주들이나 사채권자들이 ‘이 정도면 한진해운 용선료 인하나 사채 만기연장을 해줘야 되겠다’ 싶을 정도의 의지 표명이 있어야 하는 게 현재 상황”이라며 “하지만 자율협약 내용에는 이같은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율협약 신청 과정에서 현대상선이 짜낸 자구 노력을 뜯어보면 ▲용선료 인하 협상 ▲현대증권 등 자산매각 ▲비협약(비은행권) 채무 조정 ▲무상감자 등이 주력이다. 여기에 대주주인 현정은 회장 사재 출연(300억원)과 경영권 포기·현 회장 이사회 의장 사퇴 등 조치를 곁들여 채권단 점수를 땄다. 특히 채권단은 용선료와 의미있는 자산매각, 우선매수청구권·사재출연 등 성의있는 대주주 노력 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용선료 협상 ..현대 “용선주 절반이상 설득” vs 한진 “이제 시작”
현대상선은 지난 2월 자율협약 신청 이후 26일 현재 용선료 협상이 거의 막바지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영국, 그리스 등 22개 선주 중 과반수 이상이 용선료를 낮춰주는 방향으로 이미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측은 용선료·채무 조정에 대한 세부 계획없이 신청서를 냈다가 산은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용선료 협상을 아예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현재 수준에서 자율협약 신청을 덜컥 받아들였다간 용선주들에게 국민 혈세를 그냥 퍼주는 셈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종전까지 용선료에 대해서는 해외 선주를 개별적으로 만나 대화하는 수준이었다”며 “이제 단체 협상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 자율협약은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조건부 자율협약이기 때문에 6월 27일 1700억원 은행빚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용선료·사채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자동 파기된다. 이 때까지 예상되는 유류비와 항만이용료, 용선료 등 상거래 채무 5000억원가량에 대한 자체적인 조달 방안도 자율협약 신청서에는 미흡하다는 게 채권단 판단이다.
한진해운 선박(컨테이너선 60척·벌크선 32척)에 대한 용선료는 올해만 9288억원에 달한다. 내년부터 2020년까지는 연 평균 7495억원이 투입된다. 이를 깎지 못하면 채권단 지원이 이뤄지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대주주 사재출연·우선매수권도 변수
채권단은 한진그룹에 공개적으로 사재출연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진해운 실질적인 최대주주인 조양호 회장 일가와 최은영 전 회장 등에 상징적인 사재출연을 압박하며 자율협약 개시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현대상선 자율협약 신청 과정에서 사재 300억원을 출연했다. 지난달에는 현대상선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놨다.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그동안 자구노력이 억울할 수 있겠지만 (사재출연이) 선주, 사채권자 협상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진그룹 측은 내심 불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무너져가는 한진해운을 인수해 한진칼, 대한항공 등 계열사들이 지원하며 회생에 사력을 다했다”며 “이같은 노력을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또 한진해운 요구와 무관하게 한진해운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매수청구권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의지와 무관하게 채권단 재량으로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컨데 대상 기업이 청구권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채권단이 “회사가 살아날 경우 원래 오너가 다시 경영을 맡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다면 이 기업 계열주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채권단 관계자는 “현재로선 한진해운에 우선매수청구권에 부여될 확률은 0%라고 보면 된다”고 못 박았다.
◆자산매각 제때 이뤄질까
성의 있는 자산매각 등 자금 조달 계획도 향후 한진해운 회생 주요 변수다. 전날 한진해운은 국내외 터미널·벌크선·사옥·상표권 매각 등을 통해 4112억원을 실탄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냈다.
문제는 이들이 제때 매각될 수 있을지 여부다. 현재 한진해운이 들고 있는 해외 상표권과 런던 사옥은 매수자가 있지만 해외 터미널 등은 아직 뚜렷한 유동화 계획이 서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해외 터미널 등 자산을 담보로 잡고 대출 받을지 혹은 완전 매각할지 등에 대한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최대한 유리한 방식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상선은 이미 현대증권을 8000억원에 파는데 성공했고, 벌크전용선 사업부를 1200억원에 매각하고 4200억원의 부채도 이전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유조선 사업부 판매도 추진하는 등 실제 성과가 나고 있는 상태다.
◆비은행 채권 많은 채무조정도 난제
한진해운은 회사채 유예를 위한 사채권자 집회는 내달께 시작할 예정이다. 6월 1900억원 공모 사채 만기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1조1000억원 어치 공·사모 채권을 막아야 한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용선료 조정과 각종 차입금 상환 유예 등 비협약 채권 채무조정을 신속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진해운 차입금 중 비은행 채무(비협약 채권)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비은행 채권이 많으면 자율협약에 들어가더라도 채무조정이 가능한 채권이 적어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
한진해운은 차입금(5조 6000억원) 중 은행 대출은 12.5%에 그친다. 전체 차입금 (4조 8000억원) 은행대출이 23%에 달하는 현대상선조차 회사채 투자자 등과 협상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비협약채권 규
한진해운은 채권단이 반려한 자율협약 신청서를 보완해 이번주 재차 제출한다. 2차 신청서에 금융당국과 채권단 원칙이 얼만큼 반영될지가 향후 최대 관건이 됐다.
[김정환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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