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증권사 중 한 곳인 현대증권이 대규모 정부 기금을 위탁받아 불법으로 운용해온 사실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 증권사는 우정사업본부 등 정부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확정수익을 제시한 뒤, 이른바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수익률을 보전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9년 초부터 최근까지 이런 방식으로 자전거래를 한 규모가 무려 5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박찬호)는 지난 2009년 2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총 9567회에 걸쳐 약 59조원 규모의 불법 자전거래를 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현대증권 전 고객자산운용본부장 이모씨(55)씨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전 신탁부장 김모(51)씨 등 3명은 벌금 70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현대증권은 정부 기금으로부터 투자금을 위탁받고 이를 자전거래로 돌리면서도 투자금의 0.05%(5bp)~0.02%(20bp)에 달하는 운용보수를 챙겼다. 이렇게 운용보수로 벌어들인 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전거래란 한 증권사가 똑같은 주식이나 채권 등을 동일 수량, 동일 가격으로 매도와 매수를 동시에 하는 매매다. 이 거래는 주가조작 등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현대증권 ‘랩(Wrap) 운용부와 신탁부 임직원은 우정사업본부, 복권기금, 고용노동부으로부터 3~6개월 규모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다른 경쟁 증권사보다 높은 수익률을 사전 약정했다. 위탁받은 자금을 기업어음(CP)과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을 매입해 운용하다가 만기가 다가오면 자전거래를 통해 수익률을 보전해주거나, 회사의 영업이익으로 투자자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돌려막기식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만기가 도래하면 랩 계좌에 담긴 CP와 ABCP를 시장에 매도해 수익금을 지급해야 하는게 원칙이지만, 현대증권은 회사가 위탁 운용하고 있는 다른 랩이나 신탁상품에 CP와 ABCP를 비싼 가격으로 매도(자전거래)해 발생한 차익으로 수익금을 지급했다.
예를 들어, 우정사업본부로부터 3개월 만기로 3% 수익률을 약속하고 500억원을 위탁받아 운용한 뒤, 만기에 약정한 수익률보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 산재보험 기금 등 다른 정부 기금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는 랩 계좌에 고가에 매각해 수익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검찰 관계자는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자가 투자자에게 수익률을 사전 약정하는 것 자체가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하기 위해 돌려막기식 자전거래를 한 것도 법 위반 행위”라고 설명했다.
증권사가 자전거래를 목적으로 대규모 정부 기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다가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 등으로 추가 투자가 이뤄지지 않거나 신택계약 해지가 들어오게 되면 최악의 경우 증권사가 지급불능 사태에 놓이게 되고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자전거래는 엄연한 불법행위이지만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자전거래 사실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 거래규모가 방대할 경우 자료 조사 자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은 2011년 2월 회사가 보유한 랩계좌로 직접적으로 자전거래를 해오다 금융감독원에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자전거래를 멈추지 않고 제3의 증권사를 형식적으로 끼워넣는 등 불법 거래를 계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5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이 사건을 이첩 받은 뒤 임의수사 형태로 사건을 진행해왔다. 임의조사란 피수사인의 동의 하에 수사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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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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