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을 위해 열나흘 동안 격리된 채 환자를 돌본 대전 을지대학교 중환자실 수간호사의 일기가 공개됐다.
을지대병원은 24일 홍민정 중환자실(내과계) 수간호사의 일기 가운데 일부를 정리해 공개했다. 기록에는 제한된 환경에서 환자를 돌보며 보름 가까이를 견뎌낸 간호사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래는 주요 날짜별로 정리된 일기 발췌본 일부다.
▲ 9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왔다. 그럴 줄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의 끈을 꽉 쥐고 있었지만, 설마 싶었다. 굳게 닫힌 문이 우리와 외부를 갈라놓았다.
급하게 근무자 수를 맞춰 ‘낮번 간호사’를 시작으로 응급실에서 에볼라 때 준비해둔 노란 방호복을 가져와 입었고, 우리는 30분 만에 탈진했다.
온종일 땀에 젖어 붙어 있던 속옷은 몸을 감싼 모양 그대로 발갛게 부어올라 쓰라려 온다.
바깥공기가 살에 닿으니 두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동료 간호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함께 붙잡고 울었다. 집에 있을 가족들 걱정에 멈출 수 없던 눈물은 비상상황을 알리는 벨 소리에 잠시 멈췄다.
▲ 10일
우리는 추가 지원자들과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급히 인원을 보충해가며 손발을 움직였다.
또 뜬눈으로 눈물만 흘리며 하루를 보냈다. 간호사라는 직업도 이 격리만 끝나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서 시간이 흘러 밖으로 나가고 싶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다.
신혼 한 달 차인 ○○쌤, 결혼을 앞두고 웨딩촬영과 모든 것을 연기한 ○○쌤, 학교수업도 못 가는 ○○쌤,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아이들과 영상 통화하던 ○○쌤,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며 담담하게 통화를 마치자마자 펑펑 울던 ○○쌤….늦은 시간까지 뒤엉켜 울며 우리는 하나가 됐다.
▲ 11일
오전 2시께 응급상황으로 수술이 필요했다.
환자처치와 자리이동, 수술을 위해 8번 소독 및 청소, 음압 유지 확인 후 수술, 끝난 후 또 열 번 가까이 소독을 했다.
그런 와중에 격리를 납득하지 못하고 나가겠다며 소란을 일으키던 한 환자분의 손에 맞아 ○○쌤의 고글이 움직이며 눈을 크게 다쳤다.
그 환자분은 평소 말수도 적었던 분이셨는데…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바깥공기조차 쐴 수 없게 하니 속상하신 마음은 이해됐다. 하지만 우리는 서글펐다.
▲ 16일
어제 연락드린 A씨 보호자가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긴 심호흡 소리에 이어 조용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대신 마지막 편지를 읽어 달라’는 말에 막내 간호사가 놀란 눈치로 내게 알렸다.
‘남편이 △△엄마에게 전합니다’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처음 이를 받아 적던 막내 선생님부터 울렸다.
을지대병원에 1997년에 입사해 14년째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처음으로 내 부모님의 마지막을 보내듯이 펑펑 울었다. 편지의 내용이 중환자실 안을 가득 채우던 순간 우리는 눈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 19일
박○○ 간호사의 생일이었다.
힘들어 지쳐 있어 생일인 줄도 모르고 있던 ○○쌤은 왈칵 울었다.
밖에서 먹는 비싼 스테이크는 아니었지만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쌤의 모습에 모두 웃을 수 있었다.
더 축하해주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다시 일을 해야 했다.
다독여주는 많은 사람이 있어서 오늘도 힘찬 하루가 됐다. 우리가 건넨 축하인사를 우리가 받게 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 21일
“한밤만 자면 돼, 기다려 줄 수 있지?”
잔뜩 메인 목을 애써 삼키며 우리 아이를 달랬다.
“하루만 더 버티면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을 전하시던 부장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나날 속에서 마지막이 보이기 시작하니 없던 힘이 생겨나는 것 같다.
중환자실에서 나를 기다리던 환자분들을 보며 문득 ‘우리가 가족을 만나러 간 사이에는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지금까지 버텨주신 것처럼 힘내서 다시 시작된 면회 날 누구보다 행복하시길 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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