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에서 고위직에 발탁된 교수 출신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전임 정권인 박근혜 정부는 교수 발탁의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다. 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에서 사실상 최 씨의 수족 역할을 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문체부 장·차관 자리에 교수 출신인 김종덕 전 장관(홍익대)과 김종 전 2차관(한양대)을 발탁했는데, 이들은 최 씨가 주도하는 문화융성사업 지원과 그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국가대표 발탁 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문체부와 손발을 맞추는 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지낸 김상률 전 수석이 맡았다. 결과적으로 교수 출신으로만 구성된 문화정책라인에선 권력형게이트 앞에서 견제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들에게 압력을 가해 최순실씨가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자하도록 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교수(성균관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공무원 윤리규정이 몸에 배어 있는 정통 관료들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을 이들은 거침없이 해내며 최 씨의 국가권력을 통한 사익 추구 행위를 도왔다.
박 전 대통령은 교육부 장·차관도 모두 교수 출신으로 채웠는데, 당시 교육부에서도 문제가 적잖았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과 12월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와 이준식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각각 교육부 차관과 장관으로 발탁했다. 이들은 학계에 몸을 담고 있긴 했지만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들의 교육부 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았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그해 말 이들 교수 출신 교육부 장·차관을 통해 자신의 열망이 담긴 국정교과서 추진 방침을 발표했다. 이 전 부총리는 본인의 소신 여부와 관계없이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국정교과서 추진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곤혹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 교수였던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공직에 대한 책임의식이 결여된 인사가 요직에 오를 경우 국가적인 손실이 얼마나 큰 지를 드러냈다. 홍 전 회장은 2012년 선거 때 박근혜캠프에 합류했다가 인수위원회를 거쳐 산업은행 회장에 임명됐다. 이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까지 오르며 박근혜정부 내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최순실게이트가 불거지던 시점 금융·경제정책협의체인 서별관회의 내용을 폭로한 뒤 돌연 AIIB 부총재 자리를 사퇴하고 잠적해 버렸다. AIIB 부총재 자리는 우리나라가 4조2000억 원을 투자하고 얻어낸 자리다. 하지만 홍 전 회장의 돌발 행동으로 한국 몫의 부총재 자리는 사라졌다. 또한 그가 산은 회장 재직시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우리 경제가 입고 있는 손실은 금액으로 따지기 힘들 정도다.
물론 교수 출신들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경우도 적지않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를 이끌었던 서강학파 출신 학자들이 대표적이다. 국민대·서강대 교수를 지낸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정부 때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된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전두환 정부에서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이 밖에 전두환정권 때 신병현 전 부총리, 김재익 전 경제수석, 노태우정권 때 이승윤 전 부총리, 김종인 전 경제수석 등도 공직자로서 좋은 성과를 낸 사례로 꼽힌다.
전문성이라는 큰 강점을 지닌 교수 출신들의 공직 참여가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이들이 관료사회의 중간자리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교수 출신들이 장·차관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해외에서 찾기 힘들다. 미국의 경우 교수 출신이 입각하면 국장 또는 차관
교수 출신인 헨리 키신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교수 시절부터 정부 부처와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부처의 국장급으로 일하다 다시 교수로 복직한 뒤 장관에 발탁된 경우다.
[김기철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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