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나간 수백만명의 유대인 학살 만행은 당연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일부 극단 세력들은 그 일을 증명할 수 없다며 궤변을 토해낸다. 그 사실이 실재했는데 받아들일 수 없다고?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을 지시한 증거가 없다거나 수용소의 가스실이 대량 학살을 위해 사용됐다는 증명이 불가하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는 역사학자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에 맞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운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의 법정 공방을 담아낸 작품이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총 32번의 공판과 334페이지의 판결문에 달한 세기의 재판을 압축적으로 긴장감 넘치게 재현해냈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인 립스타트는 어빙의 생각과 주장이 틀렸음을 강조하는 책을 내고 출판 기념회를 연다. 이 기념회에 등장한 '불청객' 어빙(티모시 스폴)은 "히틀러가 학살을 지시한 증거를 가져오면 1000달러를 주겠다"며 대중을 선동한다.
논란을 의도했던 어빙은 영국 재판소에 립스타트와 출판사 펭귄북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 립스타트는 변호인단과 함께 역사상 슬픈, 이 당연한 사건의 그 진위 여부를 증명하려 노력한다. 학살 만행의 유무가 이 명예훼손 재판을 통해 가려져야 하는 건 일종의 아이러니다.
립스타트는 자신의 명예가 아닌, 수백만 학살자들을 위해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쓰나 몇 번의 위기를 거친다. 결론은 이미 알려진대로지만 긴장되는 순간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어빙이 펼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황당하게 들린다. 뻔뻔하게 거짓 주장을 하는 어빙. 법리적 판단은 다를 수 있긴 하나, 재판관이 상식에 어긋나는 것 같은 발언을 할 때 관객을 답답하게 하는 지점이 생긴다.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적 생각을 하는 이들은 의외로 여전히 많다. 재판의 결과가 나왔는데도 뻔뻔하게 구는 어빙이 낯설지 않다. 일본의 침략을 받아 위안부 등의 아픈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이 가슴 한 쪽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일 것 같다.
관객은 어느 순간 이 법정 공방에 빠져든다. 가슴 뭉클하고 흥분되는 지점도 있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들을 부정하는 일본에 펀치를 가하는 상상도 해볼 수 있다.
변호인단이 전략적으로 립스트리트에게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도록 하고,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발언도 듣지 않기로 한 선택은 특히 흥미롭다. 립스트
레이첼 와이즈도 눈에 띄지만, 냉철하고 소신 있게 사건을 대하는 변호인들(톰 윌킨슨, 앤드류 스캇 등)의 헌신이 영화 전반에 오롯이 드러난다. 12세 이상 관람가. 110분. 26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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