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설 두렵다"…임금체불로 고통스러운 근로자 32만명
↑ 사진=연합뉴스 |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사내 협력업체에서 일했던 이모(52)씨는 다가오는 설이 두렵습니다.
조선업 불황 여파로 작년 5월 회사가 문을 닫았는데 지금까지 마지막 두 달치 임금과 퇴직금 등 받아야 할 2천만원 중 한 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라도 좀 넉넉히 보낼 수 있도록 체불임금 일부를 달라고 애원해도 회사 측은 여력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STX조선해양 협력사 직원이던 김모(42)씨도 임금과 퇴직금 1천200만원을 받지 못해 창원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2년 넘게 일하던 회사가 부도나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것도 서러운데 임금과 퇴직금까지 받지 못하게 되자 억울한 마음만 커지고 있습니다.
경남 창원에서는 작년 6월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돌입한 후 협력업체 직원들의 체불임금 호소 요청이 급증하는 실정입니다.
체불임금 증가는 비단 조선업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2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전국 근로자 체불임금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작년 체불임금 규모는 1조4천286억원으로 2009년 국제 금융위기 당시 1조3천438억원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체불임금 신고 근로자도 작년 말 기준으로 32만5천명에 달했습니다.
조선업 중심도시인 울산시의 체불임금은 처음으로 400억원을 기록했고, 경남 거제·통영·고성 체불임금도 1년 사이에 207억원에서 543억원으로 2.6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공단 밀집지역인 경북 구미·김천도, 반월·시화공단을 둔 경기 안산·시흥도 1년 사이 체불임금이 30∼37% 늘어났습니다.
제주도까지 처음으로 체불임금이 100억원을 초과하는 등 전국이 체불임금 때문에 시름 하고 있습니다.
체불임금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경기 침체가 지속된 탓도 크지만 임금 체불을 상습적으로 일삼는 업주에 대한 단속 실효성이 떨어지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임금 체불 사업주는 통상 벌금형을 받게 되는데, 벌금형이 체불임금보다 훨씬 작아 단속의 효력이 별로 없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나 영화관에서 횡행하는 '시간 꺾기'도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 꺾기는 사업주가 애초 합의된 시간보다 아르바이트생을 일찍 퇴근시킨 후 일방적으로 임금을 줄이는 방식을 일컫는다. 불법이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사이에 만연된 행태입니다.
악덕 임금 체불 기업의 실명 공개도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현행법상 임금 체불로 실명이 공개되려면 3년 이내에 체불로 2회 이상 유죄판결을 받고, 기준일 이전 1년 이내 체불총액이 3천만원 이상이어야 합니다.
정부는 근로자 임금 체불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고용부는 우선 법률 개정을 거쳐 악덕 임금체불 기업의 실명을 즉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상습 임금체불 업주에게 철퇴를 가하기 위해 임금체불액과 동일한 금액을 근로자에게 주도록 하는 '부가금' 제도도 도입할 예정입니다.
검찰 협조로 악덕 임금체불 업주의 구속수사를 확대하고 '시간 꺾기' 단속도 대폭 강화할 방침입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를 방문, "임금은 가장 중요한 생계 수단이자 정당한 근로 대가인 만큼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체불근로자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관리감독이나 형사처벌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 우리나라의 임금 체불 대책에 변화를 줘 제도의 유연성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일본 정도만 형사적 해결방안에 중점을 두고 있을 뿐 독일·영국·프랑스 등은 법원을 통한 민사 해결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독일·프랑스는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기간에 근로 제공을 일시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에게 국가가 먼저 대신 내주는 '체당금' 제도를 수요자 위주로 단순화해야 한다"며 "형사처벌 전 사전 중재 확대와 반복·고의적 체불에 대한 배상제도 도입 등도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