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남우정 기자] “루츠 레게를 담고 싶었다”
그룹 루드페이퍼는 국내에선 흔치 않은 레게 음악을 하는 팀이다. 함께 하는 이들도 적고 대중들에게도 생소한 장르이기 때문에 루드페이퍼는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
3년 만에 발표한 ‘디스트로이 바빌론’(Destroy Babylon)은 루드페이퍼의 그 동안의 고민과 외로움을 한 장에 담은 앨범이다. 성경에서 나오듯이 모든 악행이 이뤄지는 장소인 바빌론을 악의 축으로 풀이했고 말 그대로 시스템적인 악습을 없애버리자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 사진=AAP 제공 |
“인간애적인 것에 초점을 뒀고 이런 시스템이 없을 때에 대한 이야기를 짚어가고 싶었다. 타이틀곡인 ‘꿈이라도 좋아’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이웃들의 이야기다. 각자의 아픔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했다.”(RD)
타이틀곡 뿐 아니라 15곡이나 되는 수록곡까지 묵직하다. 그 안에는 인간과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루드페이퍼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이 곡들을 디스곡, 정치적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노래의 가장 중심은 ‘사람’이었다.
“댓글에 정치 얘기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개인과 개인, 인간에 대해서 다루고 싶었다. 술 먹다가도 그냥 정치 얘기를 하지 않나? 이런 내용이지 깊게 접근한 것은 아니다. 정치도 사람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RD)
“어떤 정책을 펼치고 일을 하던지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빌론 시스템이 말하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물질만능주의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만연한 얘기다. 사람보다 자원이 먼저, 그러면서 잊혀져 가는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다.”(쿤타)
“바빌론은 시스템을 말한다. 근데 시스템이 문제인 것인데 사람들끼리 싸운다. ‘왜 그래야 할까’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곡들이다.”(케본)
2년 동안 붙잡고 있었지만 나오지 않았던 결과물은 자메이카에서 해결됐다. 레게 본거지인 자메이카로 가자고 단순하게 접근했고 루드페이퍼는 명답을 찾아냈다.
“애초에 팀이 생겼을 때부터 레게의 뿌리, 루츠레게를 하고 싶었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하기 위해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메이카로 갔다. 한국에서 2년 동안 고민을 했는데 계속 앨범은 늦어졌다. 그걸 깰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고 그게 자메이카였다. 우리가 하고 있는 레게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RD)
“아무리 한국에서 영어 회화 연습을 해봤자 직접 영어권에서 배우는 게 훨씬 빠르다. 저희도 자메이카를 가서 그 문화까지 배울 수 있었고 제가 하고 있는 음악에 대해서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졌다.”(쿤타)
루드페이퍼는 자메이카에서 레게 음악의 거장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밥 말 리(Bob Marley)가 만들었던 스튜디오인 ‘터프 공’(Tuff gong)에서 녹음까지 해냈다. 더 좋은 장비들을 갖춘 곳은 오히려 국내 스튜디오였지만 루드페이퍼는 그 안에서 이뤄진 5분의 마법을 잊지 못했다.
“레게 명반을 만들었던 프로듀서들이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더라. 그런 사람들과 만나고 레코딩을 한 달 안에 끝냈다. 2년 동안 고민을 했던 게 사운드는 비슷하게 나오는데 안에서 끌어내는 소리가 없어서였다. 이들이 그 안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데 그 5분 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2년의 고민이 싹 사라졌다. 현지 스튜디오가 시스템적으로 특별히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 30~40년의 노하우가 있다. 저희도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다.”(RD)
“터프 공에서 녹음한 자체가 영광이다. 밥 말리가 만들었던 상태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녹음을 한 것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케본)
루드페이퍼는 자메이카로 떠났던 이번 음반 작업기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서 작업기에 대해서 소개하고 자신들의 소감을 밝혔다. 이들이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넓지 않은 한국 레게신을 위한 것이었다.
“레게 교과서를 만들어 봤다. 나중에라도 어떻게 작업했는지, 앨범 자체도 힌트를 많이 줄 수 있길 바랐다. 한국 레게의 문제이기도 하다. 좋은 기술과 아는 지식이 있으면 남겨야 한다. 현재 힙합이 여기까지 온 것은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기록을 남겨왔기 때문인 것 같다. 두꺼운 힙합 관련 책들을 번역해 놓은 사람도 있었고 영상물이 나오기 전에 정리한 게 먼저 올라오기도 했다. 레게도 그런 것들을 남겨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걸 보고 레게에 관심을 가지고 꿈도 가지게 해줘야 한다.”(쿤타)
루드페이퍼는 레게의 가장 큰 매력은 ‘이타적 음악’이라고 말했다. 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지만 한국 레게의 미래, 후배들까지 생각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점점 레게를 닮아가고 있다.
“레게는 이기심이 없고 이타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국내에서 해변, 야만적인 모습으로 왜곡이 되어 있다. 그것부터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레게는 어떻게 맞서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시하는 음악이다. ‘꿈이라도 좋다’ 역시 그런 의미의 곡이다.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다가갔다.”(RD)
“레게는 의도하는 대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레게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 알려졌을 뿐이다. 저희를 통해서 ‘이런 것도 레게구나’라고 느끼셨으면 좋겠다.”(케본)
남우정 기자 ujungnam@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