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한 번 하면 하루 매출이 절반씩 떨어져요. 소음 때문에 있던 손님도 나가버리고, 시위대가 남기고 간 쓰레기 치우는 것도 다 우리 몫이죠” (서울광장 인근 분식집 사장 한 모씨)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 모두 그날(14일) ‘완전히 공쳤다’고 해요. 지난 주말에는 내내 비가 쏟아져서 장사를 못했는데, 이번 주말엔 종일 시위가 열려 또 공치게 생겼네요” (서울 빛초롱축제 장터 상인 곽 모씨)
오는 14일 서울 도심에 대규모 집회가 예고돼 일대 주민·상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약 10만 여명이 참가해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이후 최대 규모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최 측에서 예상한 참여 인원은 15만~16만여명, 경찰이 보수적으로 예상한 인원 수도 10만여명에 달한다. 경찰과 민중총궐기대회투쟁본부 등에 따르면 14일 하루는 거의 서울 전역에 걸쳐 집회가 열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신고된 주요 집회만 25건, 도심권 행진은 13건이나 된다.
‘메인 이벤트’인 오후 4시 광화문 광장 총궐기 대회(10만여명)에 앞서 서울광장, 대학로, 숭례문, 청계천, 서울역 광장, 종로 일대 등 약 20여곳에서 민주노총, 4·16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공무원노조, 전국빈민연대 등의 동시 다발적인 사전집회가 열린다. 참여 단체 대부분은 오후 3시께 개별 집회를 마치고 도로 행진을 통해 오후 4시 광화문에 집결한다. 행진 대부분이 서울광장·광화문 집결을 목적으로 사대문 안쪽에서 이뤄져 일대 교통이 상당 시간 마비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회를 이틀 앞둔 12일 만난 광화문·종로·대학로 일대 상인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특히 청계천 서울빛초롱축제 장터에 참가한 상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곳에서 캐리커쳐를 그리는 이 모씨(37)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과 상인들을 다 죽이는 짓”이라며 “집회 때문에 사람 북적여봤자 아무도 장터는 이용하지 않는다. 자릿세 보전도 힘든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궁중한복체험장을 운영하는 박 모씨(58·여)는 “상인들 생각은 전혀 안 해주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의 과격한 시위를 보고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까 걱정될 정도”라고 말했다.
종로 한 뷔페전문점의 박 모 실장은 “우리 가게 손님들은 미리 예약하고 자가용을 이용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시위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면 예약 취소가 줄을 잇는다”며 “시위하는 분들이나 정부가 다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으면 안되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광화문의 한 자동차 판매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주말에도 근무해야 하는데 출퇴근길에 애를 먹는 건 물론이고 시위 과정에서 기물이 파손될까 걱정도 된다”고 밝혔다.
대학로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양 모씨(54)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의 집회 자유만 있는 게 아니라 집회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반대할 자유도 있는 것 아니냐”며 “이기적으로 자신의 자유만 내세우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발가게를 하는 안 모씨(40)는 “대학로에 1만여명 규모라면 상가는 모두 마비되는데 지금 상가 번영회에서 전달받은 내용도 없어 당황스럽다”며 “임시 휴업이라도 해야 하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논술·면접고사를 보는 성균관대, 숙명여대 등 도심 내 주요 대학 12곳의 수험생·학부모도 비상이 걸렸다. 학교별로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사이까지 총 11만4000여명이 시험을 본다. 특히 성균관대나 숙명여대의 경우 대학로에서 열리는 민주민생수호 범시민대회(1만여명)나 서울역 광장에서 열리는 빈민·장애인 생존권 쟁취 민중총궐기(7000여명) 집회와 동선이 겹쳐 수험생들의 이동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 대학들은 홈페이지 공지나 문자메시지로 수험생들에게 당일 교통 혼잡 가능성을 알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달라고 유도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20분까지 3팀에 걸쳐 3만3000여명이 시험을 보는 성균관대는 혜화역부터 학교까지 학생을 수송하는 모범택시를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집회가 허용된 공간에서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면 차벽을 설치해 막을 계획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12일 “집회 주최 측의 홈페이지 등을 보면 결국 청와대 진출이 목적”이라며 “허용 장소를 넘어 도로를 점거하고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하면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집회를 주최한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내 53개 단체 가운데 19개 단체가 통합진보당 해산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 전력이 있는 ‘강성 단체’라 과격 시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경찰관 폭행이나 경찰 장비 파손 행위는 현장검거가 원칙이며 현장에서 검거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사법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경제적 권리나 생존권까지 침해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재원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주사회에서 눈에 띄는 시위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자신들의 권리 주장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권리나 생존권을 포기하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백상경 기자 / 황순민 기자 / 이윤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