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결혼하고 아이 낳은 뒤 일이 더 잘 풀리는 것 같아요.”
차가워 보이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니 이보다도 친근할 수 없다. SBS 최혜림 아나운서에겐 ‘서울대 출신 여자 아나운서’ 수식어가 주는 도도한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부나운서’의 정석이라고 하니 신나게 박수치며 크게 웃었다.
“절 차갑게 보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동안 딱딱한 프로그램을 해와서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딱딱한 이미지가 사실 고민이기도 했어요.”
최혜림 아나운서에겐 ‘결혼’과 ‘육아’는 자신의 일만큼이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일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정을 두고 그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하는 느낌’이라며 바쁜 워킹맘으로서 삶을 털어놨다.
↑ 디자인=이주영 |
◇ 키워드 총평 : ‘줌마’ 파워가 넘치네요
키워드1. 유부녀, 그리고 아나운서
벌써 결혼한 지 5년차다. 9년 열애한 남자와 결혼한 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니 마이크를 잡으면서도 예전과 다른 것들에 귀가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뉴스를 오랫동안 진행해왔지만 결혼한 이후 와닿는 뉴스들이 더 많아졌어요.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나 학교 폭력 등 미혼일 땐 머리로만 이해됐던 얘기들이 이젠 가슴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요즘은 맞벌이 부부 육아 뉴스에 많이 공감하게 되고요. 신입 땐 스스로 아나운서 이미지에 대한 벽이 있었다면 지금은 아줌마가 돼서 그런지 유연해졌죠. 정말 좋은 것 같아요.”
키워드2. 육아독립군
4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그는 소위 ‘육아독립군’이다. ‘육아독립군’이란 맞벌이 부부 중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나홀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 그 역시 친정과 시댁 모두 아이를 맡기기가 여의치 않아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요즘은 ‘육아독립군’이란 말이 와 닿아요. 친정이나 시댁이 가까우면 아이를 맡기면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고충이 클 수밖에 없거든요. 특히 아나운서는 방송 스케줄이 들쭉날쭉해서 더 그렇고요. 또 육아 관련 사건사고가 많아 믿고 맏길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의문도 들죠. 저의 노하우요?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요. 아이들이 입고 먹는 것에 대한 걸 집으로 가는 길에 틈틈이 체크하죠. 마치 집으로 출근하는 것 같아요. 참 쉽지 않죠.”
↑ 사진=SBS |
키워드3. 34살의 최대 고민
올해로 34살, 두 아이를 출산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다시 방송가로 돌아왔다. 아나운서로서 스케줄과 아내, 혹은 엄마로서 스케줄이 끊임없이 늘어선 일상이 시작됐다고.
“제 직업에 대해선 갈수록 더 만족하는 편이예요. 고민이 있다면 역시나 일과 가정의 양립이죠. 정답이 없어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요? 집으로 출근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지만 이 과정을 즐겨야 할 것 같아요.”
키워드4. 아찔한 방송사고
‘최혜림’이란 단어를 치면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뜬다. ‘女 아나운서, 생방송 중 대놓고 대본 읽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아찔한 방송사고에 대해 물으니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때 아마 제가 대타로 들어갔을 때일 거예요. 주말 뉴스만 맡다가 평일 앵커 대타로 방송했는데 카메라 사인이 안 맞았던 거예요. 절 찍는 줄 모르고 대본을 읽었죠. 하하. 하지만 괜찮아요. 신입 땐 출연진 얼굴을 구분 못해서 실수하기도 했는걸요.”
↑ 사진=SBS |
키워드5. 서울대 의류학과, 그리고 김태희
그는 서울대 의류학과 출신으로 한때 디자이너를 꿈꿨다. 당시 청춘스타로 급부상한 김태희와도 동문으로 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제가 02학번이고 김태희 선배가 99학번이예요. 박은경 아나운서도 저희 동문인데 항상 ‘나랑 너 사이에 김태희 있다’고 농담하기도 했죠. 근데 함정이 있다면 김태희 선배와 친하지 않다는 것? 하하. 졸업 당시 전공 수업 같이 들었던 것 정도가 생각나요. 굉장히 김태희 선배가 굉장히 수수하게 다녔는데 다들 관심이 쏟아졌죠.”
김태희라는 이슈 말고도 그에게 서울대 의류학과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3학년 때 패션쇼를 열어 참여했지만 디자이너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혹독하게 느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패션쇼 연출을 담당했는데 제 의상까지 준비해야하니 정말 바빴어요. 옷 만드는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손까지 다쳐서 진짜 서럽더라고요. 그때 ‘아, 내 적성이 아니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탐색해보다가 아나운서를 지원했죠. 지금 만족도요? 굉장히 잘한 것 같아요.”
키워드6. 연애 9년만의 결혼
복학생과 9년 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2011년 동문과 결혼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창 잘나가는 여자 아나운서로서 결혼은 크나큰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득이 됐다고 행복해하는 그다.
“신입 시절 생각하면 결혼하면서 제가 정말 잘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안정되니까 방송도 편해지고요. 점수로 매긴다면 예전엔 10점 만점에 5점인 반면, 지금은 8.5점 정도?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가는 과도기에서 아나운서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젠 마음을 편히 가지니까 사람들이 알아서 다가오고 절 알아봐주더라고요. 지금의 제 무기요? 아마 여유 아닐까요?”
[최혜림은 누구?] 1982년생인 최혜림 아나운서는 서울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했고, 2007년 SBS 14시 공채 아나운서로 방송가에 발을 들였다. 똑 부러지는 말솜씨와 단아한 이미지로 SBS ‘8뉴스’ ‘모닝와이드’ 등을 진행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