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프로에 데뷔했던 NC 박명환(38)은 두산의 ‘10년 에이스’였다. 시속 150km가 넘는 광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를 장착한 위력적인 파워 피처로 리그를 주름잡았다. 2011시즌을 끝으로 LG 유니폼을 벗을 당시, 박명환의 몸은 더 이상 프로의 시즌을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그가 팀을 나온 것은 포기가 아닌 도전이었다.
↑ 박명환은 5시즌만에 선발승의 감격을 누렸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으며 집착하지 않고 변신했던 결과다. 사진=MK스포츠 DB |
프로 팀에서 개인의 재활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날짜’에 몸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소속팀의 보호와 지원이 주는 여러 장점을 잃는 대신, ‘마이 페이스’로 몸을 만들 수 있는 개인 재활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박명환은 1년 반 이상을 준비했고 NC 입단의 기회를 잡았다.
17일 대구 삼성전에서 1789일만의 선발승을 따낸 박명환의 투구를 지켜보며 그의 ‘예전’을 기억하는 많은 팬들은 뭉클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구속과 구위로 타자들을 윽박지르던 박명환은 사라졌지만, 좌우 코너워크에 집중하면서 타자들과 타이밍 싸움을 하는 또 다른 박명환을 볼 수 있는 경기였다.
투수들에게는 누구나 하강기가 온다. 파워는 정점이 있고, 근력은 무한할 수가 없다. 타자든 투수든 현역 시절의 후반기는 ‘다른 모습’으로 승부해야할 때가 온다.
타고난 구위가 좋은, 원래 공이 빠른 ‘슈퍼스타’ 투수들일수록 변신이 더욱 힘든 경우가 많다. 어깨가 예전 같지 않고 구속이 떨어지는 위기에 닥쳤을 때, 그들은 흔히 스피드 회복에 지나치게 집착하곤 한다. ‘내 공이 이렇지 않았는데...’ 갸웃하면서 잃어버린 구위를 찾다가 안타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상태에 대한 집착으로는 롱런을 위한 변신에 성공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는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상태를 인정하는 새로운 출발점의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세게 보다는 정확하게 던지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하고, 변화구를 점검하거나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에 대해 다시 연구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박명환은 재도전을 준비하면서 야구를 다시 배운 투수다. 예전의 그는 ‘요령’이 필요했던 피처가 아니었다. 구위로 상대 타자를 압도할 수 있었던 그는 프로 마운드에서 15년 넘게 공을 던지면서도 의외로 ‘수싸움’의 경험이 많지 않았던 투수였다. 전성기 시절 동안 박명환은 주로 자기 컨디션 위주의 투구를 해왔다.
그러나 떨어진 구속으로 재기를 꿈꾸면서 박명환은 타자와의 승부를 많이 연구했다.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서 볼배합을 시도하고, 타자의 타이밍을 지켜보면서 자기 공의 전략을 수정하는 투수가 됐다.
어떤 의미에서 마운드 위의 그는 이제 진짜 싸움을 하고 있다. ‘기능적’인 피칭만을 하던 투수가 ‘기술적’인 피칭을 하게 되면서 성장하는 곳이 마운드니까.
이제 오래 살아남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프로야구다. 선수들의 끊임없는 성장과 변신을 응원한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그래픽=매경닷컴 MK스포츠 이주영 기자 / tmet2314@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