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19일, 여수 대미산 바위굴 인근에서 해안경비를 보던 방위병은 동굴 안에서 목 맨 사체를 발견한다. 당시 23살의 신호수 씨였다. 그는 속옷 하나만 걸친 채 자신의 와이셔츠와 바지로 줄을 만들어 목을 매고 허리띠로 팔과 몸을 묶은 상태였다.
당시 경찰은 가족들에게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신 씨가 목을 매 자살했다고 결론내린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수사기록과 사진을 바탕으로 자살상황을 실험한 결과, 경찰의 주장처럼 신 씨가 자살하려면 약 2.5미터나 되는 동굴의 천장까지 올라가 그 틈에 옷 뭉치를 걸어야 했다.
현장을 파악한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계획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살자의 심리와도 멀다. 스스로 자살을 어렵게 만든 상황이 납득이 안 간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분명한 동기가 확인되지 않는 한 자살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신 씨 아버지는 실종 전 세 사람이 아들을 데려갔다는 목격담에 따라 청와대까지 진정서를 보내 2주 만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경찰이었다.
당시 신 씨를 연행한 형사는 “연행한 것은 맞지만 죽음과는 무관하다”며 당시 신 씨의 죄목은 ‘간첩’이었고 상부에 승인까지 받은 강력사건이었다고 밝혔다. 신 씨가 군인시절 포상휴가 때문에 모아뒀던 속칭 ‘삐라’가 화근이 되었던 것.
더욱 충격적인 것은 “조작간첩을 만들어 세 건만 하면 특진한다”는 당시 수사관의 진술과, 신 씨의 수사를 맡은 수사관이 2계급 특진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대해 수사관은 “나도 피해자다. 이번 사건이 매년 불거지는데 왜곡하지 말라”며 정황과 근거를 모두 무시해 더욱 의혹을 샀다.
26년 전 사건인 탓에 이제는 단서를 찾기 힘들고 공소시효마저 지나 처벌방법이 없는 상황. 억울하게 죽은 아들 때문에 아버지는 오늘도 눈물만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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