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린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상가 부동산중개업소 10여 곳에선 손님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달 들어 아파트값이 3000만~5000만원 급등하자 물건을 내놓으려는 이들이다. 급매물 안내문에는 전날보다 500만원~2000만원씩 오른 새 가격이 적혔다. 이주가 임박한 개포시영과 3단지에서 전세를 찾는 문의까지 더해져 전화 벨이 쉼없이 울렸다. 개포부동산 한 관계자는 “주택 시장이 회복되면서 사업이 탄력을 받은데다 개포8단지 매각 호재까지 생기면서 집값이 강세”라며 “2008~2009년 이후 분위기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개포동 저층 재건축단지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로 재건축 사업성이 개선되고 주택 경기도 되살아나면서 아파트값이 지난 2009년 최고가에 근접하고 있다. 개포8단지의 매각도 이들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2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개포시영과 개포주공 1~4단지 등 저층 개포지구에서 재건축 후 전용면적 59㎡나 84㎡를 배정받을 수 있는 제일 작은 평형 가격은 지난 2009년 최고점 직전 수준이거나 넘어섰다. 2단지 전용면적 25㎡는 이달 5억5000만원에 실거래되며 현재 6년전 최고가였던 5억6000만원을 웃도는 6억원짜리 매물이 나와있다. 3단지 전용면적 36㎡은 7억원에 팔리면서 7억~7억2000만원까지 올라 과거 최고가 기록(7억3000만원)을 넘어설 기세다. 단지 규모가 5000여가구로 가장 많은 탓에 재건축 속도가 가장 느린 1단지 전용면적 36㎡도 최근 6억7000만원에 거래돼 6억8000만원까지 오르며 가장 비쌌던 시세(7억4000만원)의 91%까지 따라잡았다. 대체로 고점 대비 30% 가량 떨어졌지만 격차를 10%안팎으로 좁힌 평형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개포주공4단지 아파트값은 저층 단지들 중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이달 초보다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7000만원 뛰었다. 4단지 전용면적 36㎡은 6억7000만원 선으로 2009년 최고가(6억80000만원)에 근접했고, 50㎡는 최근 9억~9억1000만원에 손바뀜되면서 9억3000만원을 호가한다. 영동대로 지하공간 통합개발이 본격 추진되고 길 건너 개포8단지를 현대건설·GS건설·현대엔지니어링이 짓기로 결정되면서 투자에 불이 붙었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 보니 여유자금이 있는 50·60대가 20·30대 자녀를 위해 집 한채 마련해주는 식의 투자도 늘었다.
개포8단지는 3.3㎡당 4000만원에 분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약 2년 뒤 일반분양 시점에서 부동산 경기가 변수지만 현재 개포시영을 비롯해 개포주공1~4단지 조합이 3.3㎡당 3500만~3700만원대에 분양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 없는 수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세진부동산 관계자는 “조합원이 있는 재건축 단지는 추가분담금 염려 때문에 고급화 등에 한계가 있지만 개포8단지는 조합원이 없어 건설사가 짓기 나름”이라며 “그럼에도 4단지 시세에 대해서는 공인중개사들 조차도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기간 뛰었다”고 말했다.
개포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세가 뚜렷한 가장 큰 이유는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어서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개포주공 저층 재건축은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난 2~3년 정부의 규제 완화 덕에 급물살을 탔다. 2단지는 4개월만에 이주를 마치고 이르면 올해 말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시영과 3단지는 재건축의 사실상 마지막 행정절차인 관리처분 절차를 밟고 있으며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8~9월에 관리처분 인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1단지와 4단지는 사업시행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향후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거래량이 크게 늘면서 가격이 오른데다 가계부채 대책에 따른 대출 규제로 시장이 다소 위축될 수 있다. 용마부동산 관계자는 “대출 문턱은 내년부터 높아지는데도 매입을 보류하는 투자자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가을즈음 시영과 3단지가 이주에 나서고 1·4단지가 사업시행인가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팀장은 “그동안 노후화된 저층 단지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1만5000여가구의 브랜드 타운으로 탈바꿈하면 개포지구 위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양재천과 구룡산 등을 끼고 있는 만큼 자연 환경이 뛰어나 강남 은퇴자들이 살기에도 손색이 없는 만큼 실수요자라면 매입을 적극 고려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