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유시인' 루시드폴은 트레이드 마크인 기타를 내려놓고 다양한 소리를 활용해 새 앨범 '너와 나'를 채웠다. 제공|안테나 |
최근 한국 대중음악계는 아이돌 댄스 음악, 힙합 음악 등으로 대변되는 ’주류’의 시대를 넘어 보다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음악이 공존하는 시대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가수가 수백 곡의 신곡을 발표하고 있지만 왠지 비슷한 느낌의 음악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가요계의 현실. 그 때문일까. 세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공명을 울리듯 자기만의 길을 우직하게 걷는 뮤지션은 그 존재 자체로 빛난다.
최근 정규 9집 ’너와 나’로 돌아온 루시드폴(본명 조윤석, 44)은 전술에 꼭 부합하는 뮤지션이다.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몸을 맡긴 시적 언어를 무기력한 듯, 하지만 나지막이 속삭이는 그의 음성은 그리 대단한 듯하지 않아도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위로를 준다. 개중 어떤 곡은 마치 자장가처럼 포근해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수면제(?)가 되기도. 지금은 제주에 터전을 마련한 뒤 귤 농사를 지으며 인생의 또 다른 장을 열었지만, 새로운 경험은 그의 음악에도 고스란히 투영돼 음악 팬들에게 더 깊은 심상, 더 짙은 잔향을 남긴다.
90년대 후반 활동했던 미선이 밴드를 거쳐 솔로 아티스트 루시드폴로서 2005년 내놓은 두번째 정규앨범 ’오, 사랑’을 시작으로 2007년 3집 ’국경의 밤’, 2009년 4집 ’레 미제라블’, 2011년 5집 ’아름다운 날들’, 2013년 6집 ’꽃은 말이 없다’, 2015년 7집 ’누군가를 위한,’, 2017년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까지 2년 주기로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있는 루시드폴의 지난 2년의 시간을 담은 9집 ’너와 나’는 이번에도 조금 특별하다. 포토 에세이와 함께 발매되는 이번 앨범은 10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한 반려견 보현과의 특별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됐다. 반려견을 대상으로 한 작품집은 많지만, 그의 반려견 보현은 루시드폴의 파트너로 나서 앨범에 담긴 수많은 ’소리’를 담당했다. 앨범 크레딧에 당당히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며 국내 1호 반려견 저작권자가 됐다.
결과론적으로 이 기묘한 프로젝트는 루시드폴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일. 이렇듯 신선한 시도의 배경은 무엇일까.
"작년에 모 출판사에서 그림책 번역 제의를 받았어요. ’손으로만 해요’라는 책이었죠. 동네에 좋은 마음으로 유기견을 한두마리씩 거두다 지금은 꽤 커진 유기견 보호소가 있는데, 뭔가 제도적으로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형편이라 십시일반 주위에서 돕고 있던 상황이라 번역료를 그쪽에 기부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서 작업을 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 사정을 출판사에서 알게 됐고, 보현의 사진집을 내보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주셨어요."
루시드폴이 처음부터 출판사의 사진집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처음엔 좀 머뭇했어요. 예쁘고 귀여운 반려견을 담은 화보 단순한 반려견 사진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죠. 제안을 받고 망설이다, 올해 제가 정규음반을 내는 해고, 음반과 뭔가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마침, 제 음악적 관심사가, 예전에는 가장 어쿠스틱한 울림으로 좋은 음악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긴 시간 해왔는데, 작년에 있었던 어떤 일을 계기로 많이 변했거든요."
계기가 된 건, 예기치 않은 사고였다. "농장에서 일하다 손을 심하게 다쳤고, 한동안 기타를 칠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잡혀있던 공연도 취소하고... 뭐랄까. 음악적 거세를 당한 기분이었죠."
루시드폴은 "혼자 뭔가 돌파구를 찾다가 손가락을 많이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을 듣게 됐다"고 담담하게 당시를 떠올렸다. "전자음악이나 실험음악, 컴퓨터가 많이 해주는 음악들. 그러면서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그런 와중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와 같이 묶어서 앨범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제안을 진지하게
불의의 사고였지만 이 사고는 음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줬다. 지난 십수년간 루시드폴 음악은 ’어쿠스틱’, ’유기농’, ’아날로그’ 등으로 대표돼 왔지만 이번 작업을 계기로 접근법을 달리 하면서 더 폭넓은 음악의 세계로 나아가게 됐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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