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사람', 손현주 괴롭히는 안기부 실장 규남 役
"왜 제가 잘할 수 있는 색깔을 지워야 하나요? 지워야 하는 게 연기의 미덕일까요?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어떤 변화를 주고 장르적인 다른 선택도 해야 하지만, 본인이 가진 장기를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의 색깔에 다른 색깔도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장혁은 본인의 연기에 자부심이 강해 보였다. 고민과 생각을 거듭하고 발전해 나가려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87년,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이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에서 장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강조한다. 연쇄 살인사건을 조작, 성진을 괴롭히는 악질 안기부 실장 규남이다. 최근 정의로운 형사로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은 드라마 '보이스'의 무진혁을 잊게 하고, 지난 2011년 연기 대상 수상을 품에 안게 한 '추노'의 대길도 잊게 할 정도로 확 바뀐 모습이다.
장혁은 "왜요. 대길이 잊으면 안 돼요.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웃으며 "(차)태현이는 뭘하든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견우다. 사극 하는 견우, 예능 하는 견우 등등으로 보인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터미네이터, 실버스타 스탤론은 '록키' '람보'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그 배우가 가진 주요한 색깔의 작품이 있는데 그게 있다는 건 나쁜 건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추노'의 대길을 빼놓고 장혁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안기부나 중앙정보부 직원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항상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뭔가 상대를 찍어내리는 듯한 말투가 두려운데 그것과는 다른 모습을 찾으려고 했어요. 탄압과 규제, 통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거대한 벽 혹은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길 바랐죠."
장혁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강조하며 순수하고 열정 많았던 법학도가 왜 무너지게 됐을까 등등을 고민하고, 규남의 전사도 연구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다. 하지만 성진이 중심인 영화는 규남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장혁이 참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오롯이 친한 선배 배우 손현주와 처음으로 연기를 같이하기 위해 많은 걸 내어준 느낌이랄까?
"앞마당을 제가 지켰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래도 맛깔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와 함께하는 건 언제나 좋아요.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인) 이런 안타고니스트를 해본 적 없는데 이 캐릭터를 맡은 것도 좋았고요. 왠지 이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제가 봐도 밉상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캐릭터 나름대로 그 시대의 희생물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마음이 들더라고요. 80년대를 살았던 어른들은 이 시대와 달리 망막하면서 또 먹먹했던 느낌이라고 할까요?"
극 중 장혁은 현재 대한민국 국정농단을 일으킨 이들 중 한 명과도 닮아 보인다. 장혁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난 그 사람을 따라 하거나 성대모사를 한 건 아닌데 현 상황이 이러니 비슷한 면이 있어 보일 수도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사실 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알고는 있으나 '보이스' 촬영을 하느라 장혁이 TV를 통해 무언가를 접하지는 못했다. "청문회나 TV 뉴스 같은 걸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죠. 아시잖아요? 드라마 촬영할 때는 잠도 못 자고 유행가도 몰라요. 시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 할까요?(웃음)"
장혁은 '액션 부심'도 강하다. "20년 동안 전문 액션을 배웠다"는 그는 "절권도는 10년동안 연마했고 가르치기도 했으며, 복싱도 몇 년 했다. 스턴트도 직접 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가르친 친구 중에 스턴트 연기를 하는 친구도 많단다. 강한 자부심으로 액션을 이야기하던 그는, 어떤 대결 연기를 할 때 사람들이 "뭐야? 절권도야?"라며 우습게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깝고 억울하다"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열일'하는 배우 중 하나인 장혁은 정말 쉼 없이 달리는 인상을 풍긴다. 그 이유를 그는 복싱을 빗대 "전적이 화려한 선수가 치열하게 살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다시 또 열일 모드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연기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2000년 TJ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랩을 선보이기도 했던 그는 1년간 랩 연습을 하며 프로젝트 활동을 했던 이유도 "다양한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보자는 게 주요 목표였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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