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우습지 않아? 넌 되고, 난 안 된다는 게. 정말 안 되는 건지 끝까지 가보려고.”
배우 김하늘이 관능의 덫에 빠졌다. 바닥까지 모두 내보이면서도 제자와 아슬아슬한 관계를 놓지 못했던 건, 딱 하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는 ‘모멸감’에 관한 얘기다. 인간적인 가치를 무시한 이와 당한 이가 어떻게 파국에 이르게 되는지 무거운 메시지를 ‘여교사와 남제자’란 섹슈얼한 포장지로 잘 마감했다.
효주(김하늘 분)는 계약 만료를 눈앞에 둔 화학 교사.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출산 휴가를 쓴 교사 대신 담임 직까지 떠맡아 하루하루가 피가 마른다. 10년 넘게 백수인 작가 지망생 남자친구는 도움을 주긴 커녕 자신의 발목을 더욱 옥죈다.
게다가 대학교 후배인 혜영(유인영 분)이 이사장인 아버지 힘으로 단번에 정교사로 부임하며 자신의 자리를 빼앗자 상대적 박탈감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묘하게 갈린 두 여자 사이 갈등의 불꽃을 제대로 붙인 건 “선생님, 제가 애인해 드릴까요?”라며 영악하게 다가오는 소년 재하(이원근 분).
세 사람의 위험한 삼각관계는 96분 러닝타임 내내 스릴과 긴장을 선사하며 인간의 치사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밀애와 서스펜스 요소가 뒤섞이면서 관객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김하늘의 변신이다. 기존 건강한 ‘국민 선생’ 이미지를 벗고 팍팍한 흙수저 ‘효주’로 분해 영화를 진두지휘한다. 어쩔 수 없이 연명하는 ‘을’의 캐릭터를 화장기 없는 얼굴과 짜증이 가득한 표정, 감정 없는 말투로 완벽히 소화해낸다. “굉장히 굴욕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대본이었다”면서도 시나리오 속 글자 하나하나를 스크린에 옮겨낸다.
미소년과 옴므파탈을 오가는 이원근도 볼만하다. ‘교사와 제자의 사랑’이란 금기를 깨트리기에 충분한 매력을 발산한다. 앳된 외모와 깡마른 체격, 해맑은 눈웃음이 순수하면서도 치명적인 소년의 느낌을 잘 살려낸다.
작품 저변에 깔아놓은 ‘계급 문제’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김태용 감독은 전작 ‘거인’에 이어 가지지 못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처절한 일상을 절제된 연출로 표현했다. “남녀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열등감과 계급 문제에도 집중했다”는 김 감독의 의도처럼 작품은 ‘여선생-남제자 밀애’와 ‘흙수저의 박탈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이런 점에서 개봉 전 ‘파격적’ ‘문제작’이란 자극적인 평가로만 포장되는 건 아쉬운 일이다. ‘여교사’의 제대로 된 민낯을 확인하고 싶다면 내년 1월4일 극장으로 달려가길.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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