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는 배우 정유미가 이번엔 좀비가 득실거리는 부산행 열차에 탑승했다.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에서 무거운 배를 안고 좀비를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정유미는 위기 상황을 용감하게 맞선다.
‘부산행’은 전대미문의 재난이 대한민국을 뒤덮은 가운데,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생존을 건 치열한 사투를 그린 재난 블록버스터 프로젝트로, 제 69회 칸 국제 영화제 공식 섹션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돼 일찍이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혔다.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직접 밟고 온 정유미는 국내 관객을 만나기에 앞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영화인들과 호흡하며 영화를 관람했다. 당시를 회상한 그는 “보는 내내 같이 호흡하며 본다는 건 처음 있었던 일이라 놀라웠다. 보통 웃음 포인트가 같으면 같은 장면에서 웃고, 울고 그런 게 있는데 칸에서는 매순간, 곳곳에서 반응이 있었다. 박수도 치고 소리도 쳐주고, 보통 영화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부산행’을 통해 경험하고 왔다”고 말했다.
‘부산행’은 오직 나 자신과 딸만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면 된다는 사람, 아내를 지키는 건 물론 극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 최고의 민폐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무한한 이기심을 드러내는 사람, 그리고 음모론을 숨기기에 바쁜 정부 등 혼란스러움 속에서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표현했다. 이중 정유미가 맡은 임산부 ‘성경’이라는 인물은 만삭의 몸을 하고서도 끝까지 사람들을 챙기는 용감한 탑승객 중 하나였다.
특히 ‘부산행’에 대한 가장 큰 관심사는 좀비였다. 좀비가 어떤 형상을 띄고 있을지,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보일지 한국형 좀비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게 대다수다. 그러나 정유미는 좀비 영화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연상호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괜찮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여러 가지 그림들이 스치지는 않았다. 감독님이 궁금했다. 감독님을 만났을 때 그때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 감독님을 뵙고 나서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만났을 때 특별한 말씀은 없었다. 그런 면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영화 속 정유미는 무거운 몸으로 서울부터 부산까지 목적지를 향해 뛰고 또 뛴다. 좀비를 피해 좁은 공간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은 물론 무섭게 따라오는 이들을 피해 앞만 보고 달리기만 수십 번이다. 임산부 연기하랴, 달리랴, 촬영이 꽤나 힘들었을 법도 하지만 정유미는 의연하게 “괜찮다”고 답했다.
“배는 무거웠지만 다리를 꺾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정도는 할 만 했다. 매일 배에 모형을 차고 있다 보니 복근도 생겼다.(웃음) 나중에는 적응돼서 대기시간이 길어질 때는 쿠션처럼 배를 안기도 하고 받침처럼 물 올려놓고 먹기도 했다. 그리고 딱 계산적으로 의식하고 연기하지는 않았다. 그날 찍을 분량을 한 번에 읽고 가서 찍을 것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를 해갔다. 이미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해 더 궁금해 하거나 이야기가 더 오고가면 그게 소모적일 거라 생각했다.”
‘부산행’에서 관절이 꺾이는 몸짓, 축 늘어진 어깨,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염자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공포와 더불어 기이한 소리로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박재인 안무가를 통해 완성된 좀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구현해낸 배우들은 현실적인 그림을 완성, 극의 몰입을 높인다. 정유미 역시 ‘부산행’의 완성도에 기여한 건 단연 좀비 역할을 소화해낸 배우들이라 강조했다.
“다양한 좀비가 나왔지만 초반에 심은경과 우도임 배우가 임팩트 있게 나왔다. ‘부산행’은 초반에 관객들일 좀비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데 두 배우가 구현을 잘 해냈다. 연습도 많이 한 걸로 안다. 좀비 연기한 배우 분들의 몸동작이 장난 아니었다. 오프닝에서 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끝까지 잘 갈 수 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경험도 많았고, 고생도 많았던 ‘부산행’ 작업은 정유미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부산행’으로 인해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물으니 재밌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산행’ 촬영한 이후에는 KTX를 타본 적이 없다는 것.
“생각해보니 작년에 ‘부산행’을 촬영한 후에 KTX를 탄 적이 없다. 집이 부산이어서 제일 변한 KTX로 자주 왔다 갔다 했었는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됐다. 촬영 이후에 내려갈 때는 차로 이동한 적은 있는데 기차를 탄 적은 없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 같기도.(웃음)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KTX를 탔을 때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난다.”
개봉 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500만을 돌파한 ‘부산행’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찍을 당시부터 빨리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정유미는 현재 관객들과의 소통에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부산행’이야말로 큰 스크린에 걸 맞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막상 개봉이 다가오니까 시간이 빨리 간다는 생각이었는데 아쉽기도 하면서 후련하다.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까가 제일 궁금하지만 우리가 느끼고 재밌었던 게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