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부터 본격화된 ‘흥궈신’ 김흥국의 ‘예능상륙작전’은 여름을 맞아 정점을 찍었다. 안 나오는 TV 예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물 들어올 때’ 노를 팍팍 저었다.
보통 이쯤 되면 ‘식상하다’, ‘질린다’ 또는 ‘적당히 해라’는 힐난을 들을 법도 한데, 내일 모레 환갑을 앞두고 TV를 흥풍(風)으로 물들인 김흥국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흡사 대세 아이돌 보는듯 한, 시쳇말로 ‘오구오구’급에 가깝다.
방송에 나와 많은 워낙 많은 ‘썰’을 풀고,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며 방송 외적인 주목도 한 몸에 받은 그였기에 시류를 탄 만남에 주저하게 됐지만, 왠지 들이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무언의 이끌림에 뒤늦게나마 김흥국에게 정중히 만남을 청했다. 그리고 유난히 볕이 뜨겁던 7월 초, 신촌에 있는 대한가수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니 왜 이제야 들이대는 거요?”
통성명 직후 김흥국의 첫 발언은 예상대로 돌.직.구였다.
“맞아요. 제가 너무 늦었죠?” “아니 그러니까, 다른 인터뷰 기사 많이 나왔잖아요. 그래서 더는 할 얘기가 없는데. 주위에서도 자꾸 인터뷰 한다고 뭐라고 한다고요.”
반복되는 인터뷰가 쑥스럽고 난처하지만 역시나 ‘선수’답게 예의를 갖춰 인터뷰에 응한 그는 주도적으로 대화를 장악해가면서도 ‘엑기스’를 뽑아주는 ‘치트키’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최근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예능 방송인 브랜드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개그계 대부’ 이경규가 국민MC 유재석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는 점도 그렇지만, ‘예능치트키’로 등극하며 새 인생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김흥국이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한 점도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극찬(?)에 김흥국은 마치 미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큭큭큭거리며 손을 가로젓는데, 만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보는 분들이 거북하시지 않다면 괜찮지만”이라면서도 부담스러운 속내를 감추지 않은 그는, 축구를 예로 들어 자신의 현 위치를 진단했다.
“어제 새벽 유로2016 프랑스 대 포르투갈 결승전이 있었어요. 누군가 골을 넣고 승패가 갈리겠지만, 골 넣은 사람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현실이잖아요. 하지만 사실은 패스를 해준 사람도 중요한 거죠. 또 개최국 프랑스가 우승할 줄 알았는데 포르투갈이 우승했단 말이에요? 이게 예능 오락에도 적용이 되는데, 언제나 메인만이 스타가 되는 건 아니란 이야기죠.”
단순하지만 많은 점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약육강식-적자생존의 논리 속에 스타 위주로 돌아가는 현 방송가의 세태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도 묻어났다.
“남을 도와주면 자기가 죽는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도와줄 땐 과감하게 도와줘야 그 사람이 잘 되고, 모두가 잘 되는 거라고요. 중요한 건 패스죠. 내가 골을 넣을 수 있지만 그걸 준다는 것, 상대를 건드려준다는 거. 애정 없으며 안 되는 거죠.”
그는 잔뼈 굵은 관록의 엔터테이너이고, 가수 겸 예능인의 시초다.
1980년대 중반 해병대 전역 후 부대 동료들과 ‘5대 장성들’이라는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활동한, 대중에 알려지기 전부터 음악인의 길을 걸었던 김흥국이지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한민국 가요계에 각인시킨 건 1989년 ‘호랑나비’였다.
지금이야 가수들이 TV 예능에서 활약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돌이켜보면 당시로선 파격적이고 독보적인 행보였기에 말도 많고, 그만큼 탈도 많았다.
“저는 예능, 오락을 꾸준히 해왔던 사람이에요. 그때 당시엔 연예계 선배님들이 ‘한우물만 하라’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저도 그렇게 연기든 노래든 한우물만 쭉 파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선배님들 땐 그렇게 해도 됐지만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잖아요. 노래만으로 한평생 스타가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길만 갈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거죠. 또 슈퍼스타 조용필 형님이나 남진, 나훈아, 이미자, 패티김, 하춘화 선생님들 정도를 제외하곤 다른 가수들은 계속 음반을 내야 하고 설 무대도 많지 않은 형편인데, 제가 ‘호랑나비’ 이후 계속 노래만 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사람 좋은 얼굴로 ‘으아아~’ ‘들이대~’를 외치며 보기 좋게 망가졌다. 자신이 처한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던 김흥국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냉철하고 영리한 판단이었다. 어쩌면 지금 맞이한 제2의 전성기는 마치 십수년 이상 뿌리내린 꽃나무가 절정의 계절을 맞아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듯한 모습이다.
지난해 가을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취임한 뒤엔 예능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가요계 현실을 호소하고 있다. 주옥같은 명곡을 남겼다 해도 정작 가수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전무하다시피 한 음원시장의 부의 배분을 둘러싼 현실과, 이에 따라 전성기가 지난 가수들이 처한 참담한 입지까지. “3년 동안은 내 노래는 안 할 생각”이라는 그는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도 계속 부딪혀가며 불사르고 있다.
가수가 설 무대가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머물러있기보단 스스로 움직여 길을 찾으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설만한 무대가 왜 없냐고 하소연을 많이 하시는데, 노래 할 곳을 찾아다녀야 해요. 스타라고 다 러브콜이 오는 건 아니에요. 스스로 움직여야 뭐라도 나오고, 거기서 한 방이 나올 수도 있는 거겠죠.”
누구나 ‘한 방’을 꿈꾸지만 한 방은 물론이거니와 가늘고 길게 가는 것도 쉽지 않은 곳이 정글 같은 연예계다. 하지만 김흥국은 둘 다 해냈다. 잊혀질만하면 떠오르고, 묵묵한 활동으로 그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갔다.
“마음만 먹으면 된다고 봐요.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는데, 일이란 게 순간순간은 잘 안 될 수도 있고 내 맘처럼 안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된다고. 그런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가볍게 보면 안 돼요. 나에게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고, 나쁜 마음보다는 착한 마음을 갖고 해나가야죠. 그러면 반드시 온다고 생각해요. ‘나한테 (성공이) 오겠어?’, ‘언제 오겠어?’ 그런 생각 하면 안 돼요. 다 본인이 한 만큼 와요. 그 때 한방 잡는거죠. 지금 남들이 잘나가는 걸 부러울 것 없어요. 열심히 해야죠. 나도 10년간 무명 생활을 했는데, 한두 달, 1~2년 해서 안 된다고 포기하면 결국 안 되는 거예요. 나도 (앨범) 몇 장 날렸는데, 너무 쉽게 가려고 해서도 안 되지만 좋은 사람도 만나고 해야죠. 기왕이면 좋은 사람과 착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야죠.”
가수로서의 못 이룬 꿈이라던가 스스로 아쉬운 점은 없는지 묻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안 해본 것도 없고, 행복한 사람이죠.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죠. 라디오도 잘 되고 있고... TV도 여기저기 나와 달라고 하니 시간이 없어요. 대단한 거 아니에요?(웃음)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