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난타’는 드라마나 영화, 가요보다 빨리 외국인들을 사로잡은 장르다. 1997년 10월 초연된 ‘난타’는 한국 뿐 아니라 51개국, 300개가 넘는 도시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명실상부 최고의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작년에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해, 공연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나누기도 했다.
‘난타’는 넌버벌 퍼포먼스로, 세 명의 요리사와 한 명의 지배인이 전통 혼례 음식을 한 시간 만에 뚝딱 준비하는 모습을 흥겹고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1999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해 전 회 매진을 기록했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1년6개월간 공연을 이었다.
↑ 사진=PMC PRODUCTION |
최용석 이사는 이 같은 해외 공연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게 앞장섰다. 최근 중국 광저우에 난타 전용관을 생겼는데, 이에 대해 최 이사는 “베이징에 간 것은 2003년 즈음이고 본격화 시킨 것은 4년 정도 된다.”라고 계획을 설명했다.
“난타는 한국에서도 사랑받지만, 외국에서도 이질감 없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넌버벌 퍼포먼스지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방이 배경이고, 리듬도 신나서 어렵지 않다. 몸짓과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인데. 언어의 장벽을 깨고 관객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최 이사는 ‘난타’의 강점으로 관객과의 소통, 용이한 접근성과 공감을 자아내는 드라마를 꼽았다. 이하 최 이사와 일문일답.
Q. 중국 기사에도 난타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어 놀랐다. 어떻게 진출하게 된 것인가.
“중국 진출은 파트너가 있다. 워낙 넓어서 리서치도 쉽지 않고, 관객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는 중국인이 낫다고 생각했다. 중국 내 수요, 시장형성 등 파트너에게 맡긴다.”
Q. 중국 파트너와 어떻게 협의를 하는 건가.
“지역별로 다른데, 브랜드를 알고 오는 곳도 있고, 몇 달을 만나서 손을 잡기도 한다. 한국에서 작품을 보고 오는 분도 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우리가 찾기도 한다.”
Q. 문화적 차이가 분명 있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공산품이면 가격 측정이 어렵지 않은데 공연사업은 가격 측겅이 어렵지 않나. 한국은 저작권 보호 문화콘텐츠 법률도 잘 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잘 적용되지만 중국은 아직 미미하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데 조율 마치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꽌시(사업상 관계)만 잘 맺어 놓으면 중국 시장도 문제없다.”
Q. 마케팅에 대해 어떻게 설득하고 접근했나.
“무조건 작품성으로 간다. 마니아보다는 모든 사람을 어우를 수 있는 공연이기 때문에 미팅할 때는 공연을 보라고 권한다. 설득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들이 봤을 때 문화 갈증에 단비 같은 공연이다.”
Q.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자부심이 생겼을 것 같다
“그렇다(웃음). 사실 한국도 그렇지만 외국 관객들도 작품에 대한 평가가 냉정하다. 힘들게 번 돈으로 보는 공연인데, 불만족스러우면 어떻게 하나. 하지만 재관람하는 관객들이 많고, 난타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반증이다. 작품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생기고 또 사명감도 생겼다.”
Q. 작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다
“류승룡, 김원해 등 난타 초연 배우들이 와서 축하해 줬다. 류승룡은 정말 훌륭한 공연이 될 수 있게 노력을 많이 했다. 참 멋있는 배우고 정말 잘하는 배우다. 덕분에 1998년 애든버러에서는 30회 공연이 매진되고 99년에도 다시 가게 됐다.”
Q. 가요, 드라마, 영화의 인기로 생긴 한류 덕분에 한국에 오는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고, 한국 음식이나 패션, 메이크업 등도 인기다. 난타도 한류의 영향을 받았는가.
“물론 꾸준히 사랑받았다. 한류의 힘으로 더 성장한 것은 맞지만, 한류 때문에 성장한 것 아닌 것 같다.”
Q. 어떻게 난타라는 장르를 해외에 진출시킬 생각을 하게 된 것인가.
“뉴욕에서 공연예술을 공부했다. 난타가 해외 진출할 때인 99년부터 해외사업부에 있었다. 벌써 15년 이상 됐다. 아직도 재밌다. 성공하면 기쁘고, 새로운 시장을 뚫는 게 재밌다.”
Q.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
“15년 전 15개 도시 다닐 때 투어를 갔는데 이태리 지역을 갔는데 좀 시골이었다. 동양인은 없지만 순박한 분위기가 좋았던 곳이다. 공연이 끝나고 기립박수에 열기가 뜨거워 기분도 좋았다. 근데 공연이 끝나고 철수한 때 한 한국 여성분이 우는 것이다. 성악을 공부하고 이태리에서 살다가 시부모 때문에 그쪽에서 사는 여성분이었는데, 난타 공연으로 인해 시부모와도 더 각별해지고, 고향도 그릴 수 있었다고 하더라.”
Q. 많은 곳에서 작품을 하지만 매 공연 마다 특별할 것 같다.
“단순하게 공연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자부심을 더 충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는 사람의 관계를 풍성하게 만들지 않나.”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