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늘 젠틀하고 따뜻했던 박해진이 달라졌다. 그가 웃으며 맞이하는 모습도 어딘지 섬뜩하고, ‘러블리’에 가까웠던 그의 눈웃음은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이게 바로 ‘치즈인더트랩’의 효과일까. 그는 이미 ‘치즈인더트랩’ 안의 유정선배였다.
박해진은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에서 속을 알 수 없는 대학생 유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상대역 홍설에는 김고은이 나서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며 연일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중. 인터뷰 당시 80%의 촬영을 끝냈다고 말한 (지금은 이미 종방연까지 마친 상태)박해진은 “아직 안심할 수 없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 사진제공=WM컴퍼니 |
“이미 촬영을 많이 해서 방송을 기다리고 있으니 더 떨리는 것 같다. 중반이 넘을 때까지는 긴장하고 본다. 초반 분량들이 거의 9월에 찍은 것들이라 ‘아, 저거 언제 찍었는데’ 기억을 더듬고 있다.(웃음) 워낙 오래 전부터 화제가 돼 ‘이미 본 것 같다’는 댓글들이 많아 걱정했는데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상 해내야 하는 건 내 몫이란 생각이 들어 열심히 했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미소를 띠는 박해진에게 ‘부담’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보였다. 그의 말마따나 ‘치인트’는 2015년 드라마화를 결정한 이후부터 지금껏 늘 화제의 중심에 선 작품. 그런 ‘치인트’에 처음으로 캐스팅된 인물이며, 드라마를 이끄는 게 박해진이기에 부담감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박해진이 ‘원톱’으로 나서는 첫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박해진은 ‘원톱’이란 단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원톱’은 있을 수 없다. 제가 나이가 가장 많아서 그렇게 보였나.(웃음) 드라마라는 게 누가 혼자 끌 수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홍설(김고은 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이고, 저와 홍설, 백인호(서강준 분)와 다른 모든 캐릭터들이 서로 끌고 끌려가는 작품이다. 전 작품은 ‘어울림’이라 생각한다. 나 혼자 날 수 없는 게 연기다. 그래서 더욱 ‘치인트’의 다른 인물들이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고, 그런 어울림을 염두에 두고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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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초반에는 ‘원작’이 있다는 점 때문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고, 고민도 많이 했다고. 제작발표회에서 박해진은 웹툰이란 원작과 영상으로 옮겨진 드라마의 차이를 ‘칸의 사이를 채워내는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드라마와 웹툰의 차이를 박해진은 ‘열려있음’으로 정의했다.
“웹툰은 2D고 해석의 여지가 있는 ‘열려있는’ 장르다. 하지만 드라마는 ‘해소’가 필요한 장르다. 드라마도 웹툰처럼 유정의 속마음을 더 알 수 없게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나 많이 열려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갈팡질팡하면서 흥미를 잃게 될 거다. 그래서 극 구성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 이치로 날카로움과 달콤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반전되도록 표현했다.”
그렇게 시청자의 ‘해석’과 드라마의 흐름의 ‘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 됐고, 박해진은 이를 위해 ‘2가지 버전’을 찍는다고 말했다. ‘다크유정’과 ‘일반 유정’을 찍은 후 편집할 때 더 잘 이어지는 장면이 채택돼 사용된다고. 같은 장면을 두 가지 버전으로 찍을 만큼 열정적인 박해진은 함께 작품을 하는 김고은, 서강준을 향한 칭찬에도 ‘열정적’이었다.
“김고은은 이번 드라마가 첫 드라마다. 걱정 아닌 걱정을 했지만 오지랖이라는 걸 알았다.(웃음) 정말 유연하게 연기를 하는 김고은 덕분에 사랑스러운 홍설이 탄생했다. 서강준은 저의 딱 10년 전 나이와 똑같다. 그런데도 보시다시피 저와 긴장감을 이루는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서)강준이를 보고 있으면 ‘요즘애들 참 잘해’라는 애늙은이같은 소리 밖에 안 나온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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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벌써 10년 전을 논할 정도로 박해진의 배우 생활은 꽤나 길다. 데뷔작이 2006년 KBS2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이니 꼭 데뷔한지 10년차. 박해진에 본인의 10년 전을 물었다. 박해진은 10년 전 ‘소문난 칠공주’의 ‘연하남’이 생생히 기억난다는 말에 “생각하지 말라”며 허공을 손으로 내저었다. 그는 “당시 연기는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10년 전의 나? 연기의 ‘연’자도 몰랐다. 시청자에 누를 끼쳤다. 풋풋한 맛에 봐주신 분들도 있지만 준비가 덜 된 채로 나섰다고 생각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 때에는 말랐고 젖살이 많았다.(웃음) 여유도 좀 생겼다. 현장에서 조화가 중요하다는 걸 몸으로 느끼다보니 선후배와의 관계, 연기적인 어울림 등을 더 생각하게 됐다.”
단 한 순간도 10년 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곤 상상치 못했다던 박해진은 “배우로서 10년을 꼬박 채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배우로서 열심히 해왔다”고 설명했다. 물론, 지난 10년만큼이나 앞으로 내딛는 행보가 더욱 중요해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쁜 녀석들’에 이어 2연속 ‘사이코패스’적인 인물을 맡았다. 자칫 한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는데 왜 하필 배우의 행보로서 중요한 이 시점에 유정이란 캐릭터를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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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무 색깔 없는 박해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무섭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제가 역할을 잘 소화해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다. 만약 이 뒤에 ‘백수건달’ 역을 해서 그것도 잘한다면 그 이후에는 절 ‘백수건달’로 봐주시지 않을까. 또한 다양한 캐릭터를 욕심내기보단 특화된 나만의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만이 ‘연기변신’이고,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년차 배우가 되니 여유가 생겼고, 연기는 ‘어울림’이라는 철칙도 생겼고,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연기’가 생겼다. 박해진은 “20, 30년차 되신 선배님들이 들으시면 웃으실 것”이라며 쑥스러워했지만 그동안 만났던 작품들로 얻은 교훈들을 몸에 차곡차곡 쌓았다. 비유하자면 산은 아니지만 언덕 정도는 됐음직하다. “아직은 쌓아야 할 때”라고 말하는 박해진의 미래, 어떤 모습일까.
“딱히 장르를 정해 두진 않는다. 그 전처럼 신중하게 골라서 차기작을 선택할 것 같다. 다만 20년 뒤에도 ‘불륜 아닌’ 로맨스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보면 가슴 뛰는 사랑을 하고 싶다. 곱게 늙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웃음) 풋풋한 사랑은 아닐 수 있겠지만 치정이 아닌 중년의 사랑도 가슴 뛸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 때까지 ‘나 이만큼 연기했어’하고 거드름 피우지 않고 쌓고 또 쌓는 배우가 될 거다. 지금까지 묵묵히 달려왔듯, 꾸준하게 가고 싶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