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제 인생에서 찌질했던 순간이요? 공식석상 아니면 저는 늘 찌질해요. 친구들이 말해요. 사람들이 너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웃음)"
믿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지만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하지 않았나. 그의 눈을 보니 진짜 그런가 싶다. 화려한 스펙과 훤칠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미소로 연예계 ’엄친아’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한 배우 이상윤(34) 말이다.
이상윤은 최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두번째 스무살’에서 순애보를 간직한 대학 교수 차현석 역을 맡아 근 20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 하노라(최지우 분)와 좌충우돌 끝 해피엔딩을 선보였다.
최근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이상윤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단정함이었다. 짙푸른 니트 차림에 정갈하게 깎은 손톱이 인상적이었다. 굳이 멋 내지 않아도 수수한 매력이 멋스럽게 다가왔다.
"최지우 선배님이 다 이끌어주셨는데 너무 저는 숟가락만 얹고 묻어갔네요. 많이 사랑해주신 시청자들께도 감사드리고, 잘 이끌어주신 최지우 선배님과 감독, 작가님, 고생하신 스태프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 자신은 쏙 뺀, 겸손한 종영 소감을 건넨 이상윤에게 ’당신의 훈훈함이 연일 화제였다’ 묻자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담백한 답변을 내놨다.
"불쌍한 노라에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현석을 좋아해주신 건, 빛과 그림자가 같이 있어야 돋보이듯 그만큼 노라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급부였다고 생각해요. (최)지우누나와 (최)원영형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준 거라 저는 대본대로 잘 하기만 하면 됐어요."
드라마 설정 자체는 흔한 통속극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두번째 스무살’은 분명 특별했다. 자칫 불륜으로 비춰질 수 있는 설정도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흔한 막장 논란도, ’두번째 스무살’과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작가님이 말씀하셨어요. 한 끗 차이로 미워 보일수도 있고 예뻐 보일수도 있다고. 작가님도 고민스러운 부분이시라고 하셨죠. 상황을 만들어주는 걸 고민하셨고, 절대 놓치지 말고 연기해달라고 주문하셨기에 저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남자로서 여자에 대한 감정으로 잘해준다기보다는, 옛 동창이 여자 동창에게 잘 해주는 느낌으로요. 안타까운 마음에 잘 해주는 과정에서 멜로적인 감정은 살짝 숨겨두면서 한두 포인트만 계속 찾으려 했죠. 노라가 여자로 보이는 순간순간 눈빛이나 반응 등을 고민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통설은, 노라와 현석을 만나며 드라마처럼(아참 ’두번째 스무살’은 드라마였지) 현실이 됐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라가 ’극성’을 더했다면, 무엇보다 현석의 순애보는 수많은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현석은 그 동안 여자를 만났을까 안 만났을까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 나눈 적이 있어요. 전혀 연애를 안 했다고 볼 순 없지만 마음을 연 만남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죠. 여자에 대한 마음은, 노라와 이별한 그 순간 멈춰버린 거죠. 얼어버렸달까요. 고백을 하기 직전에 여자가 사라져버리자 마음의 성장은 멈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자를 만났다 해도, 깊은 만남은 아니었을 것 같고, 20년 만에 노라를 만나면서 어느 순간 얼었던 마음이 녹아버린 거죠."
초반 까칠하면서도 반듯한 모습에서 극이 진행될수록 "귀염 터지는" 매력까지 보여준 데 대해 이상윤은 "무엇보다 최지우 선배님과 호흡이 좋아서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게 했다"며 "처음엔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나중엔 정말 동창처럼 편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뭇 여심을 훔친 멋진 남자면서도 의외로 허당이던 현석처럼, 이상윤은 "실제로도 허당끼가 있다"며 빙긋 웃었다. 또 스스로 완벽과는 거리가 먼, 평범하면서도 찌질한 부분이 많다며 ’자폭’했다.
"친구들이랑 있으면 꾸미지 않아도 되고 편하잖아요. 평소엔 지저분하기도 하고요(웃음). 친한 친구들은 이입이 안 되서 그런지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잘 못 보는 것 같더라고요."
연예계 데뷔 전, 이상윤의 실제 대학 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그냥 공부 열심히 안 하는 학생"이라고 단언했다. "대학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쪽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20대의 대학 생활은 졸업을 위해 다녔던 것 같고, 오히려 30대가 된 뒤 3년 동안 다닐 때 수업을 더 즐겼던 것 같아요."
서른 남짓, 만학도로 보낸 시간을 돌아보며 "하노라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던 그는 "노라가 정말 힘들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의외로 드라마 광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월화, 수목드라마를 다 봤다"며 90년대 후반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제목을 줄줄 읊었다. 자칭 ’드라마 마니아’였던 그는 대학 초년생일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그렇게 연기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런 이상윤이 바라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드라마처럼 그렇게 힘든 사랑을 바라진 않아요. 힘든 것만 빼면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는 건 부러운 일이죠. 드라마에선 장애 요소를 함께 극복해가는 게 그려지는데, 같이 어느 정도 힘든 살황을 해쳐가면 오히려 돈독해지고, 끈끈해지고 그런 면은 좋은데, 너무 힘든 사랑보단, 좋게 좋게 행복한 게 좋으니까요. 그렇지만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는 일은, 부러운 일이죠."
그러면서 이상형은 "착하고 예쁘고 가급적이면 어린...."이라며 말을 흐리던
"서로 솔직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좋다"던, 솔직해서 더 빛나는 서른다섯 이 남자의 유쾌한 잔상은 꽤나 오래 남을 것 같다.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