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일본을 베끼고 중국에 뺏기고’
방송가 예능 프로그램 표절 문제는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베끼는 문제를 넘어서 국내 콘텐츠를 빼앗기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국 등 방송 제작에 이제 막 스퍼트를 가한 나라로부터 ‘도둑질’을 당하면 비난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면서도, 막상 국내 유명 프로그램에서 해외 콘텐츠를 몰래 사용하면 옹호 세력과 비판 세력으로 나뉘어 갑을논박이 오간다.
재미있는 점은 방송가 오랜 화두였던 ‘표절’이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변했다는 점이다. TV외엔 파워가 강한 매체가 별로 없었던 2000년대 이전부터 인터넷과 SNS 발달로 시청자가 ‘매의 눈’을 갖추게 된 지금까지 국내 예능 표절은 어떤 변천사를 거쳤는지 살펴보자.
◇ 日 예능, 한국의 교과서였다?
과거 국내 방송가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 포맷을 그대로 따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이라 정보 공유가 쉽지 않아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껴도 논란이 쉽게 끓어오르지 않았다. 1988년 처음 전파를 탄 KBS1 ‘전국 노래 자랑’은 현재 국민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지만, 방송 초기엔 일본의 ‘NHK 전국 노래자랑(젠코쿠 노도지만)’과 표절 시비로 곤욕을 치렀다. 일요일 정오 시간대에 편성된 것부터 프로그램 콘셉트까지 비슷한 부분이 많아 표절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지난 1995년 첫 선을 보인 KBS2 ‘퀴즈쇼 진품명품’도 일본 프로그램인 TV도쿄 ‘운수대통! 무엇이든 감정단’을 차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골동품을 두고 전문 감정단과 패널이 퀴즈 대결을 벌이는 콘셉트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
↑ 디자인=이주영 |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은 장수 프로그램들도 애초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순탄치 않은 출발을 했던 만큼 방송가 표절 논란은 그 역사가 깊다. 1978년 발간된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국 방송사가 일본 프로그램을 베끼는 행태를 두고 ‘몹쓸 버릇’이라며 ‘방송 문화의 식민지적 체질을 드러낸 일’이라고 비판한 것만 미뤄 봐도 당시 한국 방송가에서 일본 콘텐츠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일본 콘텐츠와 관련된 한국 방송가 표절 시비는 아직도 튀어나오고 있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무도큰잔치’의 한 게임이 일본 프로그램 ‘인간 UFO 캐쳐’를 베꼈다며 표절 의혹이 제기됐고, 3.1절을 앞둔 시점이라 이 논란은 더욱 민감하게 다뤄졌다. 제작진은 이를 두고 “‘인간 선물뽑기’ 게임 자체가 오래된 게임이다. 90년대 게임을 찾아보면 비슷한 포맷의 게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 사진=MBC, KBS, CJ E&M |
◇ 표절계 새로운 양상, 국경 없는 ‘소매치기’
최근 방송가에는 콘텐츠 ‘소매치기’가 국경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 해외 예능 포맷을 베낀 것과 달리 국내 콘텐츠 사이에서도 복제가 이뤄지고 있으며, 우리 고유 콘텐츠가 중국 등지로 새어나가기도 한다. ‘카피캣’ 전쟁이 더욱 뜨거워진 셈이다.
국내 콘텐츠 내 표절시비는 케이블 채널과 종합편성채널 예능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잦아졌다. 과거엔 케이블·종편 채널의 지상파 ‘훔치기’가 문제가 됐다면, 이들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 제작이 활발해진 요즘은 오히려 상황이 역전됐다.
KBS2 ‘마마도’는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를 그대로 따왔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 채 종영을 맞는 비운을 맛봤다. 또한 지난 2013년 방송된 SBS ‘아임 슈퍼모델’은 케이블채널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와 유사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마저도 해외에서 판권을 사온 것이라 제작진의 안일한 마인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콘텐츠가 도난당한 사례도 최근들어 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KBS2 ‘개그콘서트’를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엄중히 항의하겠다”며 강경한 대응을 시사했다. SBS ‘웃찾사’도 중국 강소 위성 TV ‘다같이 웃자’가 자신의 코너5개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어떻게 그런 내용을 방송했는지 해명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반발했다.
이외에도 ‘꽃보다 누나’ ‘아빠 어디가’ 등도 대륙의 못된 손버릇에 피해를 당했다. 그러나 이런 중국 방송가와 갈등은 한중 컨설팅 협약 및 제작 노하우 전수 계약을 통해 생각보다 손쉽게 풀렸다. 물론 현지 제작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는 기대 이하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눈뜨고 코 베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방송가의 전언이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