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건 ‘간지’ 뿐이다”
영화 ‘패션왕’은 동명의 웹툰을 영화화했다. 오기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주원, 안재현, 김성오, 신주환, 민진웅, 박세영, 설리 등이 출연했다. 개봉에 앞서 공개된 예고편과 캐릭터 포스터는 배역과 배우들의 완벽한 싱크로율로 높은 기대감을 선사했다.
특히 ‘만찢남’임에 틀림없는 신주환과 김성오의 연기는 개봉 후에도 관심몰이를 이어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웹툰을 접하고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기상천외한 의상들’이 스크린에 등장해 감탄을 안겼다.
레드카펫 위에 선 배우들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의상의 연속은 보는 재미를 더했고, ‘패션왕’을 가장 패션왕답게 표현해냈다. 전설의 기명(주원 분) 시각 포기 장면부터 운동회 장면, 런웨이 대결까지 상상 속의 장면을 현실로 끄집어내 이보다 더 놀라울 수 없다.
↑ 사진제공=이주영 디자이너 |
“‘패션왕’은 애정이 많이 가는 영화이자 하나하나 내 손이 간 작품이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것을 했기에 앞으로 영화 작업이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웃음) 앞으로는 더욱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 욕심이 난다. 그간 협업해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내겐 뮤지션 의상 제작 뿐이었는데 영화는 처음이라 매우 좋은 기회였다. 많은 부분을 배웠다.”
특이하게 이주영 디자이너는 ‘패션왕’에서 의상과 특별출연 1인2역을 소화해냈다. 주원과 안재현, 김성오, 신주환, 민진웅, 박세영, 설리, 나나 등 주인공부터 카메오, 단역들까지의 의상을 손수 준비해야 됐기에 약 1000벌 이상의 의상을 제작해야 됐다. 특히 크랭크인 3주전에 합류했기에 의상 제작 기간이 더욱 빠듯했을 것이다. 아니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의상 제작을 위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댔다. 감독님과 제작사, 내가 원하는 방향을 한 점으로 모으는 작업이 조금은 힘들었다. 셋이 원하는 방향도 다르고 제작 기간은 짧고, 원작이 있기에 부담도 있었지만 오기환 감독이 날 많이 믿어줬다. 시간이 부족해 촬영 전 계속 피팅을 했는데 다들 군소리 없이 피팅에 참여했다. 거의 매일매일 의상 제작 작업을 했다. 크랭크인 3주전에 합류했는데 기간적으로 이렇게 많은 의상을 제작한 것은 기적이다. 정말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웃음) 내 컬렉션보다 100배 아닌 1000배는 힘을 쏟았다. 시간이 짧았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힘든 만큼 재미있었다.”
이주영 디자이너를 포함해 또 다른 디자이너와 의상 팀, 총 10명 ‘패션왕’ 속 의상을 제작해냈다. 이에 이주영 디자이너는 “매일매일 CF를 10편 씩 찍었다. 시간이 정말 너무 없었다. 사실 영화는 디자이너가 시나리오부터 같이 시작을 했어야 됐는데 우린 나중에 투입된 셈이다. 촬영은 바로바로 해야 되는데 의상은 없지, 정말 기적이다. 기적”이라며 다시 한 번 ‘불가능’을 노력을 통해 ‘가능’으로 변화시켰음을 강조했다.
↑ 사진제공=이주영 디자이너 |
“예전부터 영화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이야기 중이던 영화도 있었고 평소 영화,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전문가들의 터치와 퀄리티가 필요한 작품은 더더욱 욕심이 났다. 앞으로도 뮤지컬은 계속 참여하고 싶고 영화 역시 제안이 들어오면 할 것이다. ‘패션왕’이라서 더욱 많은 공을 들였다. (웃음) 사실 디자이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영화였다. 1000벌 이상의 옷이 나오니까 말이다. 아마 한국영화 중 ‘패션왕’이 의상 수는 최고일 것이다. 보통 한 캐릭터 당 6벌이 안 넘는데 이번 작품은 한 캐릭터 당 거의 20~30벌은 넘는다. 피팅부터 정말 많은 옷들이 사용됐다. 컬렉션 때도 3개월에 40벌을 제작하곤 하는데 이 역시 넉넉한 편은 아니다. 거기에 비하면 ‘패션왕’은 3주 만에 몇 1000개의 의상을 뽑아내야 됐기에 정말 고생했다.”
하나의 장면을 위해 수많은 옷을 밤새 제작한 이주영 디자이너와 의상 팀. 각 장면을 위해 어떤 노력을 다했나.
“기명의 시각 포기 장면은 원래 그 디자인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디자인이 있었지만 사람이 입고 연기해야 되는데 구현이 안 되더라. 또한 움직임이 예쁘지 않아 촬영 하루 전에 완성한 의상이다. 조감독과 나 연출부, 미술 팀이 모여 시각적으로 어떻게 충격적일까, 비주얼적으로 어떻게 힘을 실을까 등을 고민했다. 아쉬웠던 장면은 운동회이다. 사실 이 장면에서 ‘패션왕’의 재미를 느껴야 됐다. 다른 부분은 평상복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이 부분은 많이 달랐기에 에센스였다. 주인공은 물론 앉아있던 다른 아이들의 의상도 개성을 담아 직접 제작했다. 노력에 비해 짧게 지나가 아쉽더라.”
“기명이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늘 주장했다. 사실 기명이는 트랜드를 만들어야 되는 인물이고 무슨 옷을 입어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해야 됐다. 여자와 남자 옷을 왔다 갔다 하는 캐릭터라 치마와 긴 장갑, 카디건 등을 자주 입혔다. 원호(안재현 분)는 무조건 럭셔리였고, 남정(김성오 분)은 간지로 사는 인물이라 잘 때까지도 반지를 끼게 했다. 내 색깔과 가장 비슷해 나의 컬렉션 옷을 다 입었다. 웹툰이 있기에 디자인적으로는 구애를 받지 않았지만, 캐릭터의 성격이 이미 심어져 있기에 이걸 바꾸기는 힘들더라. 그러나 캐릭터가 설정되어 있기에 쉬운 점도 있었다고 본다.”
블랙 아이즈 피스와 레이디 가가 등의 무대 의상 제작과 컬렉션, 영화 의상 제작이 각각 다르며 그중에서도 영화 의상 제작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 이주영 디자이너는 “‘패션왕’ 참여 당시 컬렉션도 준비 중이었다. 내 컬렉션은 신경도 안 쓰고 영화에만 몰입했다” 밝히며 작품을 향한 애정도 드러냈다.
↑ 사진제공=이주영 디자이너 |
“처음에 여성복 디자이너로 8~10년 정도 일하다 원하는 남자 옷을 찾으려고 해도 없더라. 입히고 싶은 옷이 없었던 것이다. 이게 남성복을 디자인하고 제작하게 된 가장 큰 계기다. 지금도 옷을 제작할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난 여자기 때문에 이 눈으로 봤을 때 매력적인 남자를 만들려고 한다. 의복은 서로에게 자신이 가진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웃음)
대중의 시선에서 디자이너는 무조건 화려하고 우아하기만 하다. 또 디자이너가 제작한 옷은 비쌀 것이라 생각하며 명품은 구입해도 디자이너의 옷은 구입하길 꺼려한다. 이 같은 편견 때문에 점점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한국 패션의 발전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의 패션 산업이 많이 어려워졌다. 대한민국 국민이 자국의 브랜드와 디자이너를 찾지 않으면 국내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진다. 디자이너 옷을 향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아무리 인정받아도 자신의 나라에서 인정을 받고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진짜 디자이너다. 가끔 뉴스를 통해 디자이너 옷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무너지고 디자이너의 꿈을 짓밟는 것 같다. 디자이너들이 한 벌의 옷을 위해 얼마나 연구하고 소재 계발은 물론 패턴 계발에도 노력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화려하고 돈도 많이 벌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니다. 외국 바이어들과 매출, 소재 등을 신경 쓴다. 정말 어렵다.”
“나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지만 디자이너들은 확실한 색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옷을 팔아야 되니 디자이너 역시 트랜드만을 따라가 점점 서로 비슷해지고 있어 안타깝다. 이 부분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자신의 색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나 역시 디자이너로 자리 잡기 까지 힘들었다. 다행히 힘들 때마다 블랙 아이드 피스 등 우상이 날 찾아와 내 컬렉션에 긍정 반응을 해줘서 보람을 느낀다.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진짜 많이 보고 느끼고 놀아야
마지막으로 이주영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간지란.
“내가 생각하는 간지는 자신감이다. 옷을 잘 입고 싶다면, 정말 많은 옷을 입고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확인 하는 것이다. (웃음)”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