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사와 호평이 쏟아지고 있으나 사실 음악적으로 새로울 것은 없다. '크리스말로윈'은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전면에 배치된 일렉트로닉 록이다. 하우스(House) 비트에 트랩(Trap)과 덥스텝 장르에서 주로 사용되는 그로울(Growl) 등 음악적 실험이 촘촘하게 배치된 노래라고 소속사 측은 설명했다.
일렉트로닉록 혹은 신스록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장르다. 화려한 전문 음악 용어로 수식됐지만, 쉽게 말하면 전자음악으로 포장된 록에 우리네 음악 정서인 '뽕짝' 리듬이 섞였다. 편곡이 기막혔다. 기존 흥행공식을 따르지 않은 '낯선' 구성이 듣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자극을 느끼게 했다.
음악 팬들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바로 서태지의 '용기'다. '크리스말로윈'의 노랫말은 누군가에겐 분명 직격탄 아닌 직격탄이다.
'애꿎은 마녀' '기름진 뱃살의 산타' '겁도 주고 선물도 주는 산타의 정책' 식의 일부 노랫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만 하다. 서태지가 이 노래에서 겨냥한 대상은 넓게 보면 기성세대일 수도, 좁게 보면 현 정권을 떠올리게도 한다.
과거 '교실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시대유감' 등을 통해 대중가요로서 다소 '위험한' 문제적 메시지를 던졌던 서태지다. 그의 이러한 면모를 떠올리면 결코 과한 주장만은 아니다.
서태지 덕분에 출판·음반·영화 등에 적용되던 1990년대 사전검열제도는 폐지됐고, 저작·초상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밖에 그로 인해 촉발된 우리 문화·예술 분야의 변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가 '문화대통령'으로 불린 이유다.
대중이 기대했던 그의 본모습이다. 5년 만에 돌아온 서태지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직설적 화법이 아닌, 은유와 상징을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덧 40대 가장(家長)이 된 그가 약해진 것이 아니다. 노련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이버 검열', '사이버 사찰' 논란으로 검찰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요즘이다. 검찰은 이러한 용어 사용 자체를 꺼려하고 있지만 이미 시작된 국정감사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단통법·의료민영화 같은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심성 대선 공약을 결국 파기했다.서태지가 '크리스말로윈'에서 노래한 '긴장해'야 하는 이슈들이다.
자신의 파급력을 모를 리 없는 서태지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회적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한때 집 나간 학생들조차 '컴백 홈'하게 했던 그다. 앞서 발표한 '소격동'은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소격동'에 등장하는 국군기무사령부는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연관이 깊다. 누군가에는 상당히 불쾌한 노래일 수 있다.
물론 서태지는 엄밀히 말해 소위 운동권으로 불리는 '저항' 세력이 아니다. 사회적 분란을 조장할 목적이 있을 리도 없다. '크리스말로윈'에서 서태지 본인도 자기 스스로에 대해 '나 역시 몸만 커진 채 산타가 되었어. 이것 봐 이젠 내 뱃살도 기름지지'라고 자학했다. 특정 권력이 아닌, 기성세대 전체를 겨냥했음을 암시하는 영리한 안전 장치다.
그래서 혹자는 서태지를 '타고난 장사꾼'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서태지는 최근 '빨갱이'라는 신곡을 발표한 안치환과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서태지는 대중이 열광하고 공감할 만한 주제를 잘 파악해, 이를 상업적으로 적절히 승화할 줄 아는 능력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인정할 건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가 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흉내냈든 단순히 '저항'이라는 이름을 빌려 대중을 흥분하게 했든, 서태지의 시도는 늘 신선했고, 보통 가수는 '감히' 엄두도 내지못할 소신을 보여줬다.
서태지의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시끄러운 시기에 서태지가 이런 식이면 어떤 역공을 맞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만약 어떠한 외압이 있다면 그럴수록 서태지는 '문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테니까 말이다. '잔말들 말고 그냥 처 웃어'(크리스말로윈 노랫말 中)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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