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가요계에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반짝 스타로 사라진 가수들. 혹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돌연 대중들의 곁에서 사라진 이들의 발자취를 쫓는다. 사라진 것들의 그리움에 대하여… <편집자 주>
[MBN스타 박정선 기자] 우리가 알고 있는 가수 조진수의 데뷔는 사실 잼(ZAM)이 아니었다. 그는 1989년 혼성그룹 푼수들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당시 이들은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무대를 누비며 시청자들을 웃게 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군에 가기 직전까지 그룹 야차(yacha) 소속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이 만든 그룹으로 유명하다. 당시 푼수들은 소속사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각 기획사에서 끼 있는 멤버들을 색출해나가곤 했다. 유현상의 눈에 띈 사람이 바로 조진수였다.
하지만 그가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팀이 해체됐고, 군생활 중 그는 일본에서 촬영한 한 댄스영상을 보고 새로운 그룹을 기획하게 된다. 국내 힙합이 주류를 이루지 못했던 그 시절, 조진수는 그 매력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그가 제대하고 만들어진 것이 그룹 잼이다.
◇ “다들 NO라고 했지만, 난 확신했다”
1993년 1집 앨범 ‘난 멈추지 않는다’로 데뷔한 잼은 리더 조진수를 포함해 총 5명의 멤버로 구성됐다. 당시 댄스 그룹은 소방차가 유일했던 시절이었다. 조진수의 기획으로 1990년부터 꾸려진 이 그룹을 두고 사람들은 모두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데뷔 전에 형이 서울 압구정동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었는데, 연습할 곳이 없어서 장사 끝나면 의자 다 치우고 거울 보면서 연습을 하곤 했죠. 당시에 사람들이 다들 안 된다고 했었죠. 심지어 소방차의 정원관 형은 ‘우리 셋이 서기에도 무대가 좁은데 너넨 떨어진다’ ‘돈도 다섯 명이 나눠가져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죠. 하지만 성공하면 우리를 위한 무대가 만들어질 거라 확신했어요.”
타인의 걱정은 데뷔와 동시에 무참히 짓밟혔다. 조진수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멤버들 역시 불안감에 떨었지만 조진수는 자신들의 성공을 확신하고 멤버들을 토닥였고,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하지만 이 잘나가던 그룹이 데뷔 10개월 만에 해체를 선언했다.
“사람들이 10개월 활동했다고 하니까 다들 놀라더라고요. 워낙 강렬한 데뷔였으니까요. 소방차가 3년 동안 하던 스케줄을 우리가 10개월 만에 해치웠죠. 방송이나 행사 모든 것에 있어서. 심지어 그때 지방공연을 하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멤버들을 모두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까 열이 펄펄 끓는 거예요. 결국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죠.”
어린 나이에 데뷔하다 보니 문제도 많았다. 갑자기 스타반열에 오른 탓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조진수에게 있어서 멤버들은 손수 키운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선발 과정에서부터 트레이닝시절을 함께 보내며 노래, 춤을 직접 가르쳤지만 날이 지나도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무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늘 조진수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멤버들은 조진수의 독단적인 행동에 불만을 터뜨렸다. 조진수와 멤버들 간에 갈등은 인기가 높아질수록 더욱 심해졌다.
“인기가 높아지니까 열심히 안하게 되는 팀원들도 생기고 부모님도 관여하게 되고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죠. 예를 들어 도와주고 싶어서 5만 원씩 용돈을 줬는데 어느 날 2만 원만 주면 ‘왜 2만 원만 주냐’고 성을 내는 꼴이죠. 전 그 당시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왜 2만 원만 주냐’는 생각을 하고 있죠.”
급기야 멤버들은 조진수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콧을 결심하기도 했다. 예정되어 있던 방송을 펑크 내는 등의 책임감 없는 행동이 이어졌고, 결국 조진수는 소속사 대표와 상의 끝에 5인조 잼의 해체를 결정했다.
◇ 새롭게 찾은 미용의 길, 그리고 음악에 대한 욕망
잼 해체를 결정한 조진수지만 그에게도 힘든 결정이었다. 자신이 만들고 애지중지했던 그룹의 해체, 그리고 팀원들 간의 와해는 그의 삶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10개월 활동, 그와 맞먹는 시간의 방황을 하게 된 것이다.
“정말 힘들었어요. 10개월의 방황 중에는 그냥 집에서 폐인처럼 있기도 하고 술장사를 하려고 홍콩에까지 건너간 적도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찾은 것이 미용이죠. 형이 미용실을 하고 있었어요.”
물론, 미용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음악에 대한, 무대에 대한 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때문에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재즈밴드를 결성해 2~3년 간 활동을 하고, 이후 2003년에는 팝퓨전 밴드 프로슈머를 결성하기도 했다.
“사실 프로슈머는 빛도 못 보고 끝났어요. 댄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잖아요. 그 이후 뭘 할까 생각하다가 팝과 밴드였어요. 그래서 그 두 가지를 조합해 팝밴드를 만든 거죠. 지금 밴드가 많이 활성화 됐잖아요? 저는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최근에도 그는 방송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자주 얼굴을 보이지는 않지만 SBS ‘도전 1000곡’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 세바퀴’ 등에 출연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Mnet ‘트로트 엑스’에 출연해 새로운 장르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3년 전부터 트로트 앨범에 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어요. 일본 진출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놓았죠. 그런데 운이 좋게도 Mnet 측으로부터 참가할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고 흔쾌히 출연을 결정하게 된 거예요.”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