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허정민과 만나자 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면보다도 더 밝게 탈색한 머리스타일이었다. 허정민 역시 탈색한 자신의 머리가 민망한 듯 “이번 드라마 배역을 위해 시도 해봤어요. 좀 어려 보이나요?”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색한 탈색에 도전할 정도로 열의를 드러낸 허정민이 tvN 금토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에서 맡은 역할은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결혼 대신 가벼운 연애만 즐기고 싶어 하는 이훈동. 결혼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오래 사귄 여자친구 주장미(한그루 분)가 프러포즈를 준비하자 그 즉시 잠수를 탈 뿐 아니라, 제 3자인 공기태(연우진 분)에게 대신 헤어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심지어 이별에서 가장 해서 안 된다고 꼽히는 문자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하는 찌찔이 중에서도 최악의 케이스다. 몰입을 얼마나 했는지 너무 자연스러운 연기에 혹시 실제 모습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허정민이 출연하는 ‘연애 말고 결혼’은 인류가 생겨난 이후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로 꼽히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통속적인 드라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결혼이 싫은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연애 말고 결혼’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답게 가볍고 편안한 웃음으로 안방극장을 점령해 나가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허정민이 연기하는 이훈동이라는 캐릭터는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남자다. 그러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훈동과 허정민을 동일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이훈동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허정민은 “훈동이가 입체적으로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쉽지 않기에 매력적이었죠. 훈동이라는 인물은 결혼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남자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세 남자 중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인 거죠. 다만 여자들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그래서 어떻게 하면 미움을 덜 받을까 고민하다가 ‘40대 누님들의 마음을 공략하자’고 노선을 정했어요. 어차피 10대는 진운이가, 20·30대는 우진이가 점령할 테니, 저는 나이도 있겠다 40대 이후를 노린 거죠. 비록 사위 삼고 싶지는 않겠지만, 잘 보세요. 보다보면 막내아들 같은 귀여움이 느껴지실 걸요?”
↑ 사진=연애 말고 결혼 캡처 |
“2011년도에 드라마 스페셜 ‘82년생 지훈이’로 송형욱 감독님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는 데 정말 잘 맞았어요. 감독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잊지 않으시고 제게 제의를 주시더라고요. 작품이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그 보다도 앞선 작품을 통해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출연하기로 결정했죠.”
허정민은 유독 우여곡절이 많은 연예인에 속한다. 아역배우에서 아이돌 밴드 문차일드 멤버로, 또 다시 배우로 방향을 전환한 만큼 어려움도 많았기 때문이다. 단지 연기가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문차일드를 탈퇴하면서 생긴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고, 예기지 않던 슬럼프로 인해 고생했던 시기도 있었다.
“올해로 연기인생 11년, 그 동안 힘들고 어려울 때도 종종 있었지만 제 인생 가장 큰 슬럼프는 바로 작년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연기에 대해 뭘 모르고 그저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하니 그냥 막 한 부분이 있었죠. 얼마 가지 않아 한계와 마주하게 됐지만, 그때 저는 그 한계를 넘으려 하기 보다는 그에 안주했고 그 때부터 일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군대를 다녀오니 상황은 더 심해졌었어요. 약 2년 만에 세상이 변한 거예요.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들면서 ‘내가 뭘 하고 있나, 맞게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쫓기듯 연기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고 이는 곳 슬럼프가 되고 말았죠. 그러다가 ‘연애 말고 결혼’을 만나게 됐어요. 이 작품을 통해 연기가 재밌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고, 덕분에 정말 미친 듯이 작품에 하고 있어요.”
‘연애 말고 결혼’ 외에도 허정민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일등공신은 바로 연극 공연이었다. 방송 공백기 동안 연극 ‘S 다이어리’ ‘수상한 흥신소’ 등의 무대에 오르면서 연기에 한층 더 진지하게 접근한 것이다.
“공연이라는 것을 안 했으면 연기를 금방 포기했을 것 같아요. 동료 배우들과 밤새 아이디어 짜내고, 이를 형상화 시켜서 무대에 올린 뒤 박수를 받았을 때 받는 희열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거든요. 생계적인 문제로 그만두고 싶었을 때 다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앞으로 가능하다면 대학로 연극무대에도 계속 오르고 싶어요.”
“원래 믿었던 종교를 버리고, 여자친구를 위해 교회에 따라갈 정도 연애를 하면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맞춰줄 정도로 모든 것을 버렸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여자를 위해 바꾸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조금 더 충실해지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이 작품에 이를 악물고 임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을 고백한 허정민은 최근 연출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뮤지컬 대본을 작성하면서 단순히 만들어진 무대에 위에 오르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음악 작업도 다 마친 상태고, 대본 정리도 거의 마쳤어요. 물론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즐거워요.
길고 긴 슬럼프 끝 연기에 참 맛을 알게 됐다는 허정민이 앞으로 보여줄 또 다른 필모그래피는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됐다. 그의 연기 인생은 이제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