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방권(까임방지권, 잘못을 눈감아 준다는 인터넷 신조어)이 연예인, 혹은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방송가에는 소위 ‘까방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예능프로그램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케이블 채널 tvN의 ‘꽃보다 할배’와 MBC ‘일밤-아빠! 어디가?’다.
○ 어르신들에게 뭐하는 짓이야!
케이블 채널 tvN ‘꽃보다 할배’는 ‘1박2일’을 만들었던 나영석 PD가 KBS 퇴사 후 만든 첫 예능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보다 이순재, 신구, 박준형, 백일섭 등 국내 대표적인 중견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라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국내 영화 드라마계에서 존경받는 연기자라는 점이다. 각각 약 50년 동안 국내 영화계와 드라마계를 지켜오며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연기장인’이다. 기본적으로 ‘까방권’을 얻고 시작한 것.
단순히 어른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네 사람은 우리시대의 아버지상을 대표하는 배우들이다. 캐릭터는 제각각 다르지만 권위적일 때도 있고, 자애로울 때도 있고, 다소 무뚝뚝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집스럽고 꼬장꼬장한 모습은 그대로 우리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다.
‘꽃보다 할배’에도 약점은 있다. 리얼리티 방식의 예능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출연자들을 희화화시키는 구조를 가진다. 상당수의 전문 예능인들은 스스로를 희화화시키며 웃음을 주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이들의 경우 편집이나 구성을 통해 웃음을 만드는 상황 속으로 몰리게 될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이는 존경심의 그림자 뒷편에는 노인들의 말과 행동이 ‘우스꽝스럽다’는 시선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 애들은 건드리지마!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가’도 현재 가장 대표적인 까방권 프로그램이다.
가수 윤민수와 아들 윤후, 배우 이종혁과 아들 이준수, 방송인 김성주와 아들 김민국, 배우 성동일과 아들 성준, 축구선수 송종국과 딸 송지아가 출연 중인 ‘아빠! 어디가?’는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1박2일 캠핑을 떠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다.
복잡한 구성이나 특별한 장치 없이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10세 미만의 아이들의 보여주는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이 주요 관전 포인트. 이들을 돌보는 아빠들의 부정(父情)도 프로그램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다.
아이와 가족이라는 테마가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보니 시청자들과 네티즌에게 자연스럽게 ‘까방권’을 얻었다. 실례로 최근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윤후 안티사이트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크게 화제가 되자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윤후 사랑해’라는 검색어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치며 검색어 순위를 뒤집어 버렸다.
‘아빠! 어디가?’ 역시 약점은 분명 있다. 기획의도와 시청자들의 시선이 어찌됐던 아이들이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어른들이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다는 점이다.또 그 같은 유명세가 아이들의 성장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우려가 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는 ‘까방권’ 탓에 쉽게 꺼내기가 어렵다.
○ 이밖에 ‘까방권’ 예능프로그램들
‘일밤’의 또 다른 코너 ‘진짜 사나이’ 역시 까방권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70만명에 달하는 군인뿐 아니라 군대간 자녀를 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이들이 보여주는 고생담과 우정 등 훈훈한 모습은 주요 관전 포인트다.
‘신성하다’는 말로 수식되는 국방의 의무를 담아낸 만큼 ‘까방권’도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특히 최근 연예병사들의 부실 복무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시점에 연예인들이 현역 병사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는 모습은 재미뿐 아니라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안긴다.
물론 ‘깔데’가 없진 않다. ‘진짜사나이’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군대 문화의 한 단면일 뿐이고 지극히 미화됐다는 점이다. 군대를 신성성으로 포장하게 된 것은 그 의무에 대한 불편함과 거부감 때문인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깝다. 또 군대 특유의 반민주적인, 철저한 상명하복 시스템, 군대라는 조직의 태생적인 국가주의 가치관은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무한도전’의 경우 다른 방식으로 까방권을 얻은 경우다. ‘무한도전’은 지난 8년간 방송되며 다양한 포맷 실험과 특별한 재미, 사회적 메시지까지 전달하며 국내 최고 예능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무한도전’이 까방권을 얻은 것은 긴 시간동안 방송됐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예능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말에 만나는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
실제로 ‘무한도전’이 매주 재미있고 의미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한도전’ 시청자들과 프로그램이 쌓은 신뢰로 인해 한 주 정도 재미없다고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