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를 촬영한 박찬욱 감독이 한국에 돌아왔다. 주연 배우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함께다.
21일 오전 서울 용산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영화 ‘스토커’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 감독은 “낯선 땅에 가서 외로웠고, 한국 음식도 못 먹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조국에서 영화를 공개하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국내 공식석상에 선 첫 소감을 밝혔다.
‘스토커’는 18세 생일, 아버지를 잃은 소녀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 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매튜 구드) 찾아오고 소녀 주변의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다. 99분간 미국에서도 변하지 않은 박찬욱의 색깔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박 감독은 “내 스타일, 개성이 좋으니 나더러 영화를 만들자고 했을 것”이라며 “그걸 마음껏 발휘하도록 해줬다. 잘하는 것을 해달라고 해서 해줬다”고 자신감과 만족감을 표했다.
물론 초반에는 어려웠다. 그는 “촬영 횟수가 한국의 절반 밖에 안 됐는데 적응을 하긴 했지만 처음에 애를 먹었다”며 “힘든 일이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초 단위로 찐담을 빼면서 찍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모든 것을 확인하며 찍을 틈이 없어 걱정을 했지만 많이 놓친 것 같진 않더라”고 웃었다.
박 감독은 ‘석호필’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쓴 시나리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채워넣을 게 많아 보였다”고 말했다.
“부족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여백이 많아서 붓을 대 칠할 공간이 넓은 각본으로 다가왔다. 처음부터 손을 대 빼기도 하고 고치기도 했다. 오프닝과 클로징도 새로 만들어진 거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골격이나 인물 묘사 같은 것은 그대로 유지했다. 원래 각본이 가진 장점을 제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제인 에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레스트리스’ 등에 출연하며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바시코브스카는 ‘스토커’에서도 인디아를 맡아 뛰어난 연기를 한다. 극 중 인디아는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하고, 노출 장면도 있다.
바시코브스카는 “인디아는 인물 자체가 복잡하고 미묘한 캐릭터인데 그 때문에 매료됐다”며 “노출 장면 등을 찍기 전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박 감독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모두 신뢰할 수 있어서 편안하고 쉽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특히 “감독님은 시각적으로 어떤 장면을 의도하거나 은유법을 쓸 때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 연출한다”며 “나중에 봤을 때 스토리와 맞아 떨어지는 독특한 장면이 나왔더라. 굉장히 섬세해 놀랐다. 정말 멋진 작업이었다”고 좋아했다.
박 감독은 “미아는 ‘나 연기 잘하지?’를 내세워 과시하지 않는 배우”라며 “자기 역할만 보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영화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더라. 차츰차츰 자신의 캐릭터를 쌓아올리는 걸 보고 극을 잘 이애하는 배우라고 생각했고, 관객과의 게임에서 우위에 설 줄 안다”고 추어올렸다.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는 바시코브스카는 이날 “시간이 된다면 갤러리를 다녀 보고 싶고, 한국 전통이 담겨있는 장소에도 가고 싶다. 아이스링크장에 가서 스케이트도 타고 싶다”고 바람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OST에 참여한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에밀리 웰스도 내한해 ‘비컴스 더 컬러’(Becomes The Color)로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
‘스토커’는 리들리 스콧과 故 토니 스콧 형제가 제작했다. 니콜 키드먼을 비롯해 미아 바시코브스타, 매튜 구드 등이 출연했다. 28일 국내, 3월1일 미국에서 개봉한다. 미국에서는 와이드 릴리즈가 아닌 적은 수로 개봉해 반응이 좋으면 극장을 확장하는 ‘롤아웃 방식’으로 소개된다. ‘블랙스완’이 같은 방식으로 성공한 적이 있다.
박 감독은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테니 개봉하는 도시마다 좋은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