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딸’이라는 멍에도 모자라 뜻하지 않게 성폭행까지 당했다. 잊고 싶은 아픔이 너무 컸기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고통을 잊기 위해 180도 다른 삶을 살며 웃음으로 자신을 포장했지만 수연의 큰 눈망울에는 늘 눈물이 고여 보였다.
연기 데뷔 후 지금까지 8년째. ‘로코퀸’이라는 수식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렸던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인물들과 도무지 매치가 안 되는 캐릭터로의 변신이었다. 시청자로서 수연의 감정선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는데, 수연을 연기한 당사자는 하물며 어땠을까.
“처음엔 힘들었는데 마무리될 때는 오히려 제일 편했어요.” 의외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윤은혜만의 이유가 있었다.
“인물을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거든요. 수연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설명도 없고 해답도 없잖아요. 하지만 수연이가 엄마와 재회하고, 정우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오히려 쉬워졌어요. 캐릭터가 치유됐기 때문에 종영 후 윤은혜로 돌아왔을 때도 더 편해졌죠.”
그녀는 마지막 이수연의 모습이 실제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여느 드라마 종영 후와 달리 이수연을 떠나보내는 데, 혹은 비워내는 데 대한 부담이 없었다 했다.
하지만 이수연으로 산 두 달 여의 하루하루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1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수연이 한정우를 만난 직후 장난(!) 치던 초반을 제외하고는, 중반부터 거의 매일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그야말로 ‘눈물’과 ‘오열’로 점철된 나날들이었다. 이제는 ‘눈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윤은혜의 눈물 스토리를 들어봤다.
윤은혜는 “촬영 내내 한두 시간 밖에 못 자는데, 전날 울고 그 다음날도 우는 장면을 찍으려면 눈이 가필드처럼 부어 있었다. 2주 내내 울 때는 너무 힘들었다. 또 울어? 이런 생각도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상대 배우가 울 때도 저도 눈물을 흘려주거든요. 그러면서 서로 더 열심히 하죠. 상대가 우는 걸 보면 눈물이 저절로 나요. 아직까지 안약을 넣어서 연기를 맞춰본 적은 없어요.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실제 우는 것에서 상대의 감정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 연기한다 생각하면 거의 하루 종일 운다고 볼 수 있죠.”
눈물로 점철된 시간들. 궁극에 윤은혜에 대한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다. 당사자로서는 더는 듣고 싶지 않을 ‘재발견’이라는 수식어도 뒤따랐다. 1년 반 만의 성공적인 안방극장 컴백. 하지만 초반에는 꽤나 긴장했단다. 명품 아역들 때문이다.
“아역들에게 너무 관심이 많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부담도 됐어요. 저 같은 경우, 워낙 초반에 논란이 많았던 배우라, 작품 할 때마다 긴장해요. 늘 질타를 받다 호평으로 넘어가는 편이었죠.”
윤은혜는 “열심히 하면 (혹평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더라”며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중에게는 기존과 다른 이미지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었고, 혹시나 안 어울린다고 하면 어떨까, 아역들이 너무 잘 해서 비교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어요. 아직 등장하기 전 촬영장에서도 심장이 두근두근했어요.”
오랜 시간 그녀를 괴롭혔던 악플과, ‘두고보자는 식’의 시선에 대한 트라우마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을 터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웃음에 함께 웃고, 그녀의 눈물에 함께 슬퍼하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이제 서른살이 된, 배우 윤은혜 성장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더하우스컴퍼니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