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문세(53)가 20개월간 10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기간 이문세의 ‘붉은 노을’ 콘서트를 본 관객만 자그마치 15만명. 내달 28일부터 31일까지 총 4회에 걸친 서울 공연을 끝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분에 넘치는 행복을 맛봤다”고 소회했다.
가수로선 행복한 시간이었을테지만, 한 인간으로선 엄청난 자기절제가 뒤따랐다. “절대 몸이 아파서는 안됐고, 항상 기분 좋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했다”는 것. “술을 몇 시 이후로 안 마신다거나 무슨 요일엔 풀어지면 안된다”는 그만의 기준을 정해두고 자기와의 싸움을 해나갔다.
쉰을 넘긴 그가 아직도 무대 위에서 20대의 열정을 내뿜도 비결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일주일 내내 팽팽 논다”고 표현했다. “그들(관객)은 일하다 오지만 나는 일주일 내내 쉬고 운동하면서 침대 속부터 농축된 것들을 토해낸다. 그러니 관객들은 (내게) 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0대 몸매가 아닌 것에 감사하다”고 웃었다.
이날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리메이크 앨범 ‘Re. Leemoonsae’가 발매된 날이었다. “그동안 비난 받을까봐 겁이 났는데, 이번엔 통속적인 상식을 바꾸는 시도를 해봤다”며 따끈따끈한 앨범 한 장을 내밀었다. “내 음악과 벌이는 싸움이 참 재미있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흐뭇해보인다.
“만약 더욱 풍요로운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했다면 안했을 겁니다. ‘소녀’가 보사노풍으로 달라졌고, ‘광화문 연가’도 예전엔 반주에 끌려서 따라갔지만 이번엔 지휘자처럼 끌고 갔어요. 반응이 괜찮으면 광산에서 금 캐내듯이 다른 곡들도 작업하려고 해요.”
들어보니 원곡과 확 다른 편곡이 귀를 잡는다. ‘소녀’와 ‘알 수 없는 인생’은 브라질 유명 드러머이자 프로듀서인 세자르 마샤도에 의해 담백한 보사노바풍으로 갈아입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광화문 연가’는 탱고 리듬으로 재해석했다.
스스로 자신의 히트곡을 다시 부르기까지 35년이 걸렸다. 그동안 많은 후배가수들이 그의 곡을 리메이크 해왔고, 지금도 심심찮게 요청이 들어온다.
그는 리메이크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후배 이정을 언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정과는 한 달간 미국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던 사이.
“그 사람의 과거 현재 이미지, 모든 계급장을 떼고 ‘가수 이정’만 놓고본다면 그의 음악적 필을 따라갈 후배가수는 없다고 봐요. (이)정이라면 제 곡 중에 어떤 곡이라도 자기 스타일로 잘 할 것 같아요. 이정과 한달간 미국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룹 ‘시카고’도 탐을 냈어요. 즉석제안을 받고 시카고 공연의 스페셜 게스트로 섰는데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버스 타고 가자’며 다음 공연 제의도 받았으나 제가 대신 막았죠. 이 친구는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웃음)”
다만 “해외에서 수많은 뮤지션 만난 후 느낀 점은 ‘겸손의 미학’이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고 음악을 처음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돌아봤다. 육체는 10년 이상 늙어버린 기분이었지만, 정신은 풍요롭게 채우고 돌아왔다.
후배 가수들의 ‘동행제안’도 많았다. 싸이, 김장훈, 성시경, 서인영은 음악여행에 꼭 끼워달라고 했던 후배들이다.
“지난 번엔 시간이 안 맞아 같이 가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꼭 가고 싶었던 러시아·스페인·이탈리아·쿠바로 떠났으면 해요. 지난 4월 싸이와 함께 세계음악여행을 떠나기로 계획 했는데 일정상 같이 못가게 됐어요. 그때 제 욕심만 채웠더라면 ‘강남스타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하!”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보니 “제작자로 나서보라”는 권유도 많았을 듯 하다. 10년 전 탤런트 박상원과 ‘WAT’를 설립해 가수 헤이를 배출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SM 같은 걸 만들자 해서 펀드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손 들고 다 돌려줬다”는 그는 “나는 이수만 형과 다르다. 수만이 형은 가수를 그만뒀지만 나는 활동 중인 아티스트다. 소속 가수를 띄우기 위해 다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그래서 2년 만에 그만뒀다”고 했다.
지금도 이문세는 “거창한 목표도 없고 한국에서 음악적인 상징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번 앨범이 갑자기 잘 됐으면 하는 마음도 없다”고 했다.
그저 “돈 많이 벌어서 많이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가십에 등장하지 않도록 제 것 잘 지키고 살겠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보자”며 기자 한 명 한 명을 배웅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