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모델이라는 영예로운 명함을 내려놓고 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한 신인 배우 김영광(25). 드라마 몇 편을 통해 연예계 관계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 찍은 그는 지난달 개봉한 영화 ‘차형사’(감독 신태라)로 충무로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냈다.
187cm에 70kg. ‘우월하다’는 표현이 일반화됐지만 철저히 비현실적인(!) 신체 사이즈는 그가 모델이 되기까지, 그리고 스타가 되기까지 유리하게 자리한 측면도 없지 않다. 실제로 정식 모델로 데뷔한 뒤 김영광은 기존 연예인 이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업계에서 승승장구했다.
불과 20대 초반의 일이었다. 많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자칫 자만에 빠졌을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김영광은 그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연습을 꽤 오랫동안 해온듯 했다. 그리고 지금은 배우로서의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 연기 초년병이다.
포털 사이트 프로필상 김영광은 지난 2006년 서울컬렉션 무대를 통해 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모델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그는 국내외 무대를 휩쓸며 2000년대 후반을 뜨겁게 장식한 톱모델로 활동했다.
현장에선 이미 A급 연예인 못지않은 반응을 체감했을 터. 하지만 김영광 역시 무명, 이른바 생계형 모델로의 경험에 대해 털어놨다. “광고 같은 거 보면 뒤통수만 나오는 장면들 있죠? 그런 식으로 광고 촬영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현재 소속사 사장님을 만나 정식으로 모델 일을 하게 됐어요.”
어쩐지 영화 ‘차형사’에서와 비슷한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김영광은 이 땅의 수많은 생계형 모델의 입장을 대변했다. “감독님과 시나리오 쓰신 분이 조사를 정말 많이 하신 듯 했어요. 캐릭터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죠.”
그는 모델을 바라보는 일반의 선입견에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모델 하면 왠지 놀 것 같고, 뭐랄까 연예인의 아류 같은 느낌? 그런 시선이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일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더 못 놀아요. 모델 하는 친구들 중 상당수는 모델에 대한 비전과 꿈을 갖고 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죠.”
첫 영화 속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다” 했다. “현장에서 막힌 부분도 많았는데, 오히려 결과물이 생각보다 잘 나왔어요. 감독님이 워낙 편집을 잘 해주셔서(웃음). 저 스스로는 100점 만점에 45점 정도 줄래요.”
점수가 너무 박하다 했더니 “보여드린 게 너무 없기 때문에 박할 수 밖에 없다”고 응했다.
“영화에서 보여드린 모습은 정말 일부분이에요. 제가 해왔던 직업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아무래도 경험들과 중복된 부분도 있고. 대중은 누군가 새로운 얼굴이 나타날 때, 신선함에 반해서 눈길을 주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때 쯤 새로운 걸 원하잖아요. 또 다른 모습에 대한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친구들과 얘기를 많이 하곤 해요.”
알려졌다시피 김영광은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함께 출연한 홍종현, 이수혁과 모델에서 연기자로 넘어오며 더욱 절친해진 사이. 만나면 뭐 하느냐 묻자 “술 먹고 차 마시고 수다 떨기 좋아한다”면서도 “생각보다 일 얘기를 많이 한다”고 답했다.
비슷한 코스로 연기자의 길에 접어든 20대 초중반, 비슷한 연령대이다 보니 은연중에 경쟁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지만 현명한 ‘모범’ 답안을 내놨다. “경쟁심, 물론 있죠. 있는데, 신경을 쓰면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금방 잊자 싶죠. 왜냐면, 제 것 하기에도 너무 바쁘거든요(웃음).”
김영광을 비롯한 ‘모델 출신’들에게 연기자의 길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행보로 자리매김했다. 차승원, 이민기, 주지훈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비율 좋은’ 배우들 중 상당수가 모델로 먼저 데뷔한 이력이 있다.
“처음엔 모델에 대한 생각만 했는데, 모델 수명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죠. 그러던 중 연기를 접하게 됐어요.” 편안한 마스크 덕분에 곳곳에서 러브콜이 왔다. 많지 않은 경력으로나마 그는 “고달픈 현장”에 대해 체감하게 됐다.
“자유롭게 연기하는 방법을 아직까진 못 찾은 것 같아요. 나이도, 경력도 많지 않다보니 여전히 감정을 절제하는 걸 배워가는 단계에요. 어떤 면에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든 점도 있죠.”
다행히 캐릭터에선 금세 빠져나오는 편이다. 머무름보단 다음을 준비하는 습관 덕분이다.
모델 출신 연기자로서 ‘다크호스’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김영광에게 칭찬조로 얘기를 건넸지만 그는 “더 이상 기대주라는 얘기는 듣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왠지 ‘다크호스’ 수식어가 금세 사라질 듯한 좋은 느낌이 든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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